

15일 정식 운영한다는 매체 홈페이지에는 이태원 참사 관련 글들 게재
민변 TF “트라우마 겪는 유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권리 침해” 비판
친민주당 성향 온라인 매체 2곳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명단 전체를 유족 동의 없이 인터넷에 공개했다. 2개 매체는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의 제기자인 유튜브 채널 ‘더탐사’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참여해 최근 출범한 ‘민들레’라는 매체이다.
민들레는 14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태원 희생자, 당신들의 이름을 이제야 부릅니다’라는 제목 아래 사망자 155명(이달초 기준) 전체 명단이 적힌 포스터를 게재했다. 명단은 가나다 순에 외국인 희생자 이름은 로마자로 표기됐다. 이름 외의 다른 정보는 표기되지 않았다.
민들레는 “시민언론 더탐사와의 협업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명단을 공개한다”며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고 주장했다.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들 매체가 ‘입수’한 명단을 온라인에 일방 공개하는 데 대해서 이 매체는 “유가족 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면서 “희생자들의 영정과 사연, 기타 심경을 전하고 싶은 유족들은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했다.
더탐사는 SNS를 통해 ‘입수한 명단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도 모두 넘겨드렸다’고 밝혔다. 명단이 적힌 이미지가 SNS를 통해 퍼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영정사진은 아직인가요”, “나이 정보도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면서 추가 공개를 원한다는 댓글도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유족들의 동의를 받고 명단을 공개한 것인가”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또한 “유족 당사자가 아닌데 왜 나서서 명단을 공개하고 협의체를 만들라고 종용하는 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대응 TF’도 성명을 내고 “트라우마를 겪는 유가족의 돌이킬 수 없는 권리 침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TF는 “유가족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으로서 희생자 유가족의 진정한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하거나 공개하려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TF는 또 “모든 사람은 헌법과 국제 인권 기준에 따라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는다”며 “희생자 명단이 유족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명단 공개는 민주당 일각을 제외하면 야권에서도 의견이 갈리며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어 온 사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를 하는가.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당연히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촛불을 들고 다시 해야되겠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당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 대표의 제안이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라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 때 국가보훈처가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 공개를 거부하고 대법원이 이를 정당한 결정으로 판결했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의 명단도 비공개가 정당하다면, 유족 대다수가 원치 않는 이태원 희생자 명단은 왜 공개되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희생자의 존엄과 유가족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라며 “국가적 참사와 비극을 매번 당리당략에 이용하려는 나쁜 습성을 당장 버리길 바란다. 패륜을 멈추고 국민을 섬기는 공당의 금도를 지키라”고 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에서 “희생자들의 인권을 침해해서라도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피해 가려는 패륜적 정치기획이다. 이태원 참사를 아무리 ‘세월호’로 만들려고 해도 이제 국민들은 속지 않는다”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야권 내에서도 이정미 정의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은 유족이 결정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지난 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동의하는 유족들을 전제로 명단을 공개하고 추모를 하도록 하는 게 인권적 측면에도 부합하는 게 아니냐”라는 진성준 민주당 의원 질의에 “일정한 부분은 공공적인 알 권리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도 있으나, 이것의 기본적인 출발은 사생활이다”며 “(그럼에도) 유족의 동의 여부에 따라 조정이 돼야 할 내용이어서, 당국에서도 염두에 두고 뭔가 준비하고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고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닌 것같다고 답했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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