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관 前 대법원장 별세(1935~2022)

대법원장 6년간 재임하면서
사법부 독립성 확보에 기여

판공비 아껴 직원에 격려금
대통령 순방 공항영접 없애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제도를 도입한 윤관 전 대법원장이 14일 노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향년 87세.

38년간 판사로 봉직한 고인은 1993년부터 6년간 대법원장으로 사법부를 이끌었다. 1935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고와 연세대를 졸업,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고인은 사법 제도 개혁과 사법부 독립성 확보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1997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피의자를 판사가 직접 심문,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영장심사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전까지 판사는 검찰의 수사기록만 보고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했다. 제도 도입을 두고 검찰은 피의자 신병 확보 어려움 등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전 원장이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영장실질심사 제도가 뿌리내리게 됐다.

대통령 해외 순방 때 대법원장이 공항에 나가는 관행도 윤 전 원장 시절 사라졌다. 대법원장실 등에 걸었던 대통령 사진도 떼도록 했다고 한다. 정보기관 직원들이 법원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도 윤 전 원장 시절 단행됐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이어진 구습을 타파, 사법부 독립을 확보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평가다.

고인은 법원에서 청렴 판사의 상징이었다. 대법관 임명 당시 출가한 자녀들의 재산까지 모두 합쳐 5억 원대의 재산 신고를 했다. 대법관들 중 최하위였다. 1995년 2월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사건’ 때에는 법원 직원 10명이 경매입찰 보증금 300억 원가량을 횡령한 것이 드러나자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최초로 대국민사과를 했다. 대법원장 재직 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및 비자금 사건의 3심 재판을 내렸다.

고인은 대법원장 6년간 점심식사 대부분을 구내식당에서 배달시켜 집무실에서 혼자 해결했다고 한다. 공식 일정을 제외한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판공비를 아껴 전국 법원 직원들에게 1인당 2만∼3만 원씩 추석 격려금을 줬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졌다. 고인은 1999년 9월 퇴임사에서 “법관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국민이 믿고 의지할 마지막 언덕마저 잃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인은 38년간 법관 생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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