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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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

노인, 삶의 끝 죽음을 ‘조망’
주어진 날을 더 소중히 여겨
젊은이보다 ‘행복지수’ 높아

■ 나이듦의 철학

노화는 ‘성격’ 완성의 과정
‘생애 회상’ 통해 과거 회복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아가




요즘 노년을 인생의 쓸쓸한 뒤안길로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유튜브 채널 ‘밀라논나’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롤모델이 된 디자이너 정영숙, 영화 ‘미나리’로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은 노년에 경력의 화려한 정점을 찍었다. 물론 이런 씩씩하고 당당한 노후가 유명인의 전유물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잇달아 나온 에세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등은 육체가 쇠락해도 청년 못지않은 열정과 에너지로 제2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준다. 이들 책에 담긴 70∼80대의 삶은 여전히 활동적이고, 여전히 풍파를 겪고 있으며,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 이번 주 나란히 출간된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과 ‘나이듦의 철학’ 역시 노후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들 책은 “노년은 쇠락과 퇴화가 아닌 삶의 완성”이라며 전반전보다 훨씬 길어진 후반전을 맞이하는 태도와 철학을 사유한다.

한소원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의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은 노후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로 문을 연다. 지난해 발표된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들의 행복지수가 젊은 세대보다 월등히 높았다. 스탠퍼드대 심리학자인 로라 칼스텐슨은 이런 결과의 요인으로 의학기술 발전 덕분에 건강을 유지하는 기간이 길어진 점과 함께 ‘미래 시간에 대한 조망’을 지목한다. 나이가 들면 남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에 부정적 감정에 휩싸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삶의 끝에 있는 죽음을 ‘조망’하며 주어진 나날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성취적 목표’에서 ‘정서적 목표’로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 역시 노인의 행복을 이끈다. “노인들은 ‘제한된 에너지’를 인식하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피한다. 그들에겐 성취보다 내적 기쁨이 중요하다.”

물론 노인들의 전반적 행복지수가 높다고 해서 세월과 함께 저절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책은 “행복에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며 스마트 에이징, 즉 현명하게 나이 들기 위한 구체적 솔루션을 짚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매일 15분씩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 행복감이 높아졌다. ‘인생 스토리’를 재구성하면서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행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흔히 SNS는 불필요한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도구로 인식하지만, 저자는 적당한 소셜미디어 활동이 행복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미시간주립대 연구진의 실험 결과,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도 더 튼튼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SNS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까운 친구가 오프라인에 충분히 존재해도 온라인 커뮤니티는 ‘연결’을 더 깊게 만들어준다.”

누구나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맞이할 수 있게 된 변화는 일자리 시장을 바라보는 전통적 패러다임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한다. 저자는 세계적 자동차 회사 BMW 등의 사례를 들어 ‘노년층을 고용하면 생산성이 하락한다’는 명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급격한 고령화 속에 장년층과 노년층이 일자리를 붙잡고 있으면 청년 취업률이 떨어진다는 ‘세대 간 일자리 전쟁론’ 역시 근거 없는 통념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나이 든 사람들의 고용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청년 고용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로 경제활동을 제한해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 경제는 ‘제로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노후를 ‘쉬는 기간’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이 현실적 지침을 알려주는 실용 에세이라면, ‘나이듦의 철학’은 노화의 의미와 본질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인문 에세이다. 심리학자 제임스 힐먼이 1999년 해외에서 첫 출간한 책은 노화가 ‘성격’을 완성하는 과정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편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젊은 시절에 남 눈치를 보고 사회 질서에 순응하느라 ‘깎여나간다’. 그러다 노년에 이르면 우리는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생애 회상’을 통해 과거를 회복하고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다.

노인들이 바로 어제 나눈 대화는 곧잘 잊어버리면서 수십 년 전의 일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히 기억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성격은 나이 듦이라는 ‘실험실’에서 정련된다. 노인이 되면 인격을 구성하는 ‘강박 관념’이 바구니 밖으로 튀어나온다. 잘 웃고, 시끄럽고, 기분 좋고, 화도 잘 내는 ‘본래의 나’로 돌아간다.” 저자는 또 노후에 반복되는 생애 회상이 뒤늦은 ‘뉘우침’의 시간을 마련해준다고 말한다. 앞만 보고 내달린 ‘직선도로’에서 한 걸음 물러서 지난 시절의 과오를 복기하면서 “흠결 많은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의 두 책은 젊은 시절이 그러하듯 노년에도 행복과 아픔이 교차하는 게 우리 삶이라는 것을, 언제가 ‘노후’인지는 몰라도 다가오는 그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러준다. 힐먼의 말처럼 “나이 듦은 인간으로 사는 한 필연이요, 영혼이 의도하는 바다.” 각 권 242쪽·1만6000원, 352쪽·2만 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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