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점 명품관 가보니…
“오픈 뒤엔 대기번호 100번”
고환율에 수 차례 가격 인상
“미리 사두길 잘했다” 인식까지
리셀,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
“매장 문을 연 후에 줄을 섰더니 대기번호가 100번을 넘어간 적도 있어 아예 새벽부터 나옵니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명품관. 새벽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시간대였지만 샤넬, 롤렉스 등 매장 앞에는 수십 명이 캠핑용 의자에 앉아 진을 치고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한다는 이모(29) 씨는 “올 초 지인이 샤넬 가방을 구매했는데, 그 이후에도 두 번이나 가격이 올라 ‘미리 사두기를 잘했다’고 하더라”며 “어차피 명품 가격은 계속 오르기 때문에 살 거면 빨리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명품업체들이 고(高)환율을 내세워 올해 들어 수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지만, 명품 구매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고물가로 인한 경기침체, 소비 한파 우려에도 백화점 명품관 앞에는 매장이 열기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명품 시장만큼은 경기의 ‘무풍지대’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다. 명품 리셀(재판매)이 20∼30대의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은 데다, 업체들의 잇단 가격 인상으로 “명품은 지금이 가장 싸다”는 인식이 소비 심리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의 올 3분기 명품 장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했다. 지난 2분기 명품 장르 신장률(19%)을 웃도는 수치다. 롯데백화점도 명품이 포함된 해외패션 장르 매출이 같은 기간 19.0% 증가해 2분기 신장률(17.9%)을 뛰어넘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명품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명품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명품업체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환율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지속해서 올리고 있다. 샤넬은 이달 초 한국 매장의 전 제품 가격을 3∼11%까지 인상했다. 이는 지난 8월 이후 3개월 만이자, 올해만 네 번째 가격 조정이다. 샤넬코리아는 가격 인상 이유에 대해 “환율 변동에 발생할 수 있는 지역 간 가격 차이를 줄이기 위해 가격을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루이비통도 지난달 27일 국내 판매 가격을 3% 올려 올해 두 번째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보테가 베네타도 지난 15일 가방과 구두, 액세서리 등 전 제품 가격을 평균 14% 올리며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지속 등 경기침체 우려에도 세계 각국의 명품 수요가 꺾이지 않으면서 주요 명품 기업들의 실적도 날개를 단 듯 고공행진하고 있다. 루이비통, 디올 등이 속한 루이비통모에에네시(LVMH)는 올 3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늘어난 197억6000만 유로(약 27조5000억 원)를 기록했다.
글·사진 = 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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