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BTS 정국 ‘드리머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시는 고단할 때마다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그 많은 시와 그 많은 노래. 그 시절 나의 보물 1호는 라디오였다. 방송사에 엽서까지 보낸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라디오를 끼고 산 셈이다. 사연이 그럴듯했는지 채택이 되었고 심지어 내 목소리가 생방으로 울려 퍼지기까지 했으니. 참고로 그 음악 방송 제목은 ‘별이 빛나는 밤에’였고 그때는 내게 그야말로 ‘별의 순간’이었다.

나의 모교는 국가대표를 다수 배출한 축구 명문이었다. 하루 종일 선수는 물론 학생들도 운동장 여기저기서 공을 찼다. 저질 체력인 나는 친구들이 축구 하는 동안 그늘에서 습작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가끔 주전자로 음료수 배달 봉사도 해서 인심을 얻었다. 지금도 친구들은 동네 축구에 매진하는데 나는 밤낮으로 음악동네를 서성거리니 인생을 만드는 건 성적보다 (글자를 뒤집어) 적성이라 나는 믿는다.

내가 신청한 노래는 형제 듀오 에벌리 브러더스의 ‘나는 오직 꿈만 꿀 뿐’(All I Have To Do Is Dream·1958)이었다. 앞부분에 꿈(dream)이라는 단어가 8번이나 반복되는 몽상가요(?)다. 안고 싶을 때 안고 입 맞추고 싶을 때 키스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꿈을 깨면 다 날아가 버린다는 자각이다.(Only trouble is, gee whiz, I’m dreaming my life away) 나중에 교단에 서서 드림(Dream)이 드라마(DRAMA)가 되려면 준비(Ready)와 실천(Action)만으론 안 되고 그다음 단계, 즉 꿈은 왜 자꾸만 달아나는지(Mystery) 회의와 연단을 거친 후에 다시 도전(Adventure)해야 한다고 조언한 기억이 난다.

이제 또 다른 소년들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월드컵 경기장에 ‘꿈은 이루어진다’ 카드섹션이 처음 등장했을 때 소년은 열 살이었다. 훗날 그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SNS에 남긴 글은 짧지만 강렬하다. “준비는 끝났다. 가장 큰 꿈을 좇을 시간.” 꿈꾸는 자들(dreamers)에게 20년 후는 멀기만 한 시간이 아니다. 2002년 월드컵 때 다섯 살이던 음악소년(정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개막식 무대에서 공식 주제가를 불렀다. ‘보세요, 우린 꿈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걸 믿기에 우린 그걸 이루죠’(Look who we are, we are the dreamers/ We make it happen, ’cause we believe it).

미래를 준비하는 자들에겐 비주얼이 아니라 비전이 보인다. 정국이 부른 ‘드리머스’는 몽상이 아니라 확신의 노래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린 그게 일어나도록 만들어요’(We make it happen ’cause we can see it). 최근에 내가 SNS로 받은 미국 배우 존 웨인(1907∼1979)의 명언도 마침 이렇다. ‘내일은 우리가 어제로부터 뭔가 배웠길 바란다’(Tomorrow hopes we have learned something from yesterday).

따뜻한 국밥이 그리운 계절이다. 함민복의 시 ‘긍정적인 밥’에 소박한 질문이 나온다.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이어서 내놓은 시인의 답은 착실하고 겸손하다.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음악동네에도 이 시를 옮겨 심으면 좋을 성싶다. ‘내 노래가 얼어붙은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드리머스’에는 형광펜으로 색칠하고 싶은 단어들이 있다. 바로 열정(Passion)과 존중(Respect)이다. 노래 가사처럼 열정을 유지하는 데 존중은 필수다. (Here’s to the ones, that keep the Passion, Respect) 존중이 사라진 열정은 이기는 데만 몰두한다. 그들은 싸우려고 모인 게 아니라 더 가까이 모이려고 공을 차는 것이다.

작가 · 프로듀서 ·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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