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사를 쓰다 보면 흔하게 보이는 댓글이 ‘각자도생’이다. 코로나19에 걸리면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각자도생에는 정부 역할이 실종됐다는 함의도 깔려 있다. 지난 20일 국내 코로나19 사망자가 3만 명을 넘어서자 ‘과학방역은 어디로 갔냐’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전체 코로나19 사망자의 약 80%(2만4468명)가 올해 나왔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지난 3월 12일 1만 명을 넘었고, 한 달 만인 4월 13일 2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7개월 만에 3만 명을 넘겼다. 희생자의 90%는 고령층이다. 일각에서 감기라고 치부한 코로나19는 단일 질병으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다. 하지만 이제는 사망자로 이어질 수 있는 확진자와 중환자 수에 다들 둔감한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자 피로감은 쌓였고 긴장감도 풀렸다. 정부도 방역 조치를 다 거둬들였다. 대신 정부는 과학방역에 이어 표적방역을 꺼내 들었다. 일상을 평소처럼 누리는 대신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곳과 고위험군을 집중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표적방역은 잘 작동하고 있을까. 요즘 의료 현장에서는 ‘복불복 방역’이란 말이 나돈다. 고위험군 환자들은 치료와 처방에 적극적인 의료진을 만나면 입원과 투약이 상대적으로 쉽다. 소극적인 의사를 만나면 치료제 하나 받기 힘들다. 타미플루가 무조건 처방되는 독감과도 대비된다. 코로나19에는 아직도 일관된 기준이 없어서다. 표적방역을 위한 프로토콜(규약)도 성글다. 정부가 보호하겠다던 고령층은 코로나19에 걸려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도 팍스로비드를 처방받지 못한 채 감기약만 받아야 한다. 제 발로 응급실로 걸어왔던 환자가 투약 시기를 놓치고 구급차에 실려 중환자실로 들어오는 사례도 잦아졌다. 오히려 중환자를 양산하는 구조다.
의료계가 꼽은 표적방역의 요체는 중환자와 사망자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단순히 치명률 등 수치로만 평가하면서 병상과 화장장만 늘리는 사후대책에만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미크론 변이 BA.5가 유행한 지난 7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치명률은 델타 변이 유행 시기에 견줘 20분의 1로 낮아졌다. 반면, 80세 이상 사망자는 2.5배 늘었다. 이태원 참사 수사, 카타르월드컵, 파업 등 굵직한 사안이 쉼 없이 돌아가는 이 순간에도 매일 50여 명씩 소리 없이 숨지고 있다. 유명무실한 표적방역으로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방치한다면 국가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침묵에 파묻힌 고령층의 죽음을 마음 아파했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죽을 사람이 죽은 거란 얘기였어요. 숨진 분들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가족이에요. 단지 젊은 사람들의 죽음과 달리 아무도 목소리를 내주지 않아 말없이 돌아가시는 거죠. 젊은 사람과 어르신들 죽음의 무게는 다르지 않아요.”
표적방역이 이름값을 못한다면 우리는 올겨울에도 사망자가 쏟아져나오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한다. 사망자가 더 이상 숫자로만 박제돼서는 안 된다. 우리 일상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다면 적어도 약자를 지키기 위한 방역 전략은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 정부가 표류하는 표적방역을 다시 추슬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