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렌드 예측서로 보는 2023년 풍경
연말이 다가오면서 내년을 예측하는 트렌드 연구서가 쏟아지고 있다. 트렌드 도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잘 알려진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지난 2008년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처음 출간한 이래 이맘때면 서점가를 채우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도 온라인 서점에서 트렌드를 키워드로 넣으면 30종에 가까운 책이 검색된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진 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예측 불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며 기업은 물론 일반 대중도 ‘미래 트렌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소비 취향의 다변화’부터 ‘무(無)지출 챌린지’, ‘리본 세대의 부상’, ‘조용한 사직 열풍’ 등 대표적인 트렌드로 2023년을 내다봤다.
■ ‘평균 실종’의 시대
N명의 소비자, N개의 취향 ‘N극화’
개성만큼 정규분포서 멀어지길 원해
■ ‘無지출 챌린지’ 과시
덜 먹고 덜 쓰는 삶 ‘힙’한 문화로
얼마나 오래 안 쓰나 놀이하듯 경쟁
물론 이런 변화의 이유로 경제적 여건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김 소장은 ‘소비하지 않음’이 정치적 소신과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폭주하는 자본주의에 맞서 덜 먹고 덜 쓰는 삶이 청년 세대의 ‘힙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무지출 챌린지가 과식을 거부하는 ‘소식 먹방’, 한 달 동안 채식을 하는 ‘비건 리셋 챌린지’, 월요일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고기 없는 월요일 캠페인’ 등으로 진화한 것은 이런 설명을 뒷받침한다. “값비싼 차와 명품을 소비하는 것만이 과시의 도구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소비하지 않는 삶, 명품을 욕망하지 않는 삶이 누군가에겐 힙한 욕망이 될 수 있다.”
■ ‘리본 세대’의 부상
은퇴는 쉼 아닌 다시 태어난 시간
‘나’ 자신을 위한 인생후반전 나서
책은 시니어라 부르기엔 너무 젊고 역동적인 5060 세대를 ‘리본(Re-born) 세대’라는 이름으로 정의한다. 맞벌이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재정적인 지원만 하면서 ‘다시 태어난 듯’ 새 삶을 가꾸는 5060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리본 세대는 은퇴 후 삶을 ‘쉬는 기간’이 아니라 ‘뒤늦게 꿈을 펼치며 자아를 실현하는 시기’로 인식한다.
실제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50∼65세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가장 소중한 존재’로 자기 자신을 꼽았다.
외국어와 운동을 배우고 취업을 위한 자격증까지 이들은 청년들 못지않은 ‘학습 열정’을 불태운다. 노인정이나 복지회관에서 소일하는 은퇴자의 노후는 옛이야기가 된 것이다.
■ ‘조용한 사직’ 열풍
최소한의 일을 하되 책임은 거부
워라밸 위기오면 미련 없이 이직
김 교수에 따르면 2030은 ‘최소한의 일’만 하고 ‘책임’은 떠안기 싫어한다. 어차피 한 회사를 오래 다닐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올여름부터 유행한 ‘조용한 사직’이라는 유행어 역시 실제로 퇴사하진 않지만, 맡은 일만 처리하는 소극적 업무 태도를 뜻한다. 2030은 일과 삶의 균형을 도모하며 ‘조용히’ 회사를 다니다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면 미련 없이 떠난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미국에선 ‘대사직 시대(The Great Resignation)’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고, 국내에선 ‘이직 준비’ 관련 검색량이 2년 새 두 배가량으로 급증했다(‘2023 트렌드 노트’<북스톤>). 과거엔 잦은 이직을 조직 적응에 실패한 결과로 보는 시선이 많았으나 최근엔 착실한 경력 관리의 수단으로 인식한다. 김 교수는 “급여 인상이나 복지만큼 중요한 것은 회사가 던지는 메시지”라며 “‘이직 러시’를 막으려면 수직적 위계질서를 없애는 것에 더해 젊은 직원들에게 조직을 통해 성장한다는 느낌을 안겨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동·산업 → 인공지능 → 포스트 코로나 → 메타버스’… 트렌드 책보면 미래가 보인다
트렌드 전망서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한국사회의 관심이 어디로 이동해왔는지 잘 알 수 있다. 14∼15년 전만 해도 소비·노동·산업·문화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친 흐름을 예측하는 책이 많았으나 ‘트렌드 도서’가 하나의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최근엔 부동산·인공지능(AI)·블록체인 등 세부 주제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가 교보문고에 의뢰해 ‘2018∼2022년 트렌드 도서 베스트셀러 톱 20’을 분석한 결과, 매년 1등을 차지한 최강자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미래의창)였다. 연도별 리스트를 보면 2018년엔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트렌드 MZ 2019’(한빛비즈)가 눈에 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의 특징과 취향에 대한 관심이 트렌드 도서 수요로도 연결된 것이다. 이듬해의 경우 ‘인공지능 비즈니스 트렌드(와이즈맵)’와 ‘유튜브 트렌드 2020’(이은북), ‘트렌드 차이나 2020’(더봄)이 주목받았다. ‘인공지능 비즈니스 트렌드’는 구글과 아마존,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AI를 미래 먹거리로 삼는 이유를 분석했다. 유튜브 시장의 확장 가능성을 포착한 ‘유튜브 트렌드 2020’은 유튜버를 꿈꾸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지침을 담았다. ‘트렌드 차이나 2020’의 인기는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에 관심을 갖는 기업과 독자들이 늘어난 덕분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인류를 덮친 2020년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 양상을 예측한 책 두 권이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 가운데 이코노미스트 김광석의 ‘포스트 코로나 2021년 경제전망’(지식노마드)은 ‘트렌드 코리아 2021’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021년에는 가상화폐와 3D 가상세계에 대한 열풍 속에 ‘블록체인 트렌드 2022-2023’(비즈니스북스)과 ‘메타버스의 시대’(다산북스)가 상위권에 자리했다. 올해는 수년 전부터 이어진 부동산·주식 투자 열풍을 반영하듯 ‘머니 트렌드 2023’(북모먼트)과 ‘부동산 트렌드 2023’(와이즈맵)이 각각 2위, 6위에 올랐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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