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의 트렌드│정유라 지음│인플루엔셜

신조어 등 MZ 언어습관 분석
“단어 조합 하이브리드 언어는
새 사회적 합의가 스며있는 것”


■ 정치적 말의 힘│박상훈 지음│후마니타스

링컨 · 오바마 등 명연설 조명
“막말 경쟁 오염된 정치판 탓
韓민주주의 제대로 작동못해”


말(言)은 소통의 도구이자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다. 말을 통해 우리는 사회 결속력과 시대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때마침 나란히 출간된 ‘말의 트렌드’와 ‘정치적 말의 힘’은 우리 시대의 말을 탐구한 연구서다. 빅데이터 분석기업 바이브컴퍼니의 정유라 연구원이 쓴 ‘말의 트렌드’는 줄임말과 신조어 등 MZ세대의 언어 습관을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의 ‘정치적 말의 힘’은 에이브러햄 링컨·윈스턴 처칠·버락 오바마 등 정치인의 명연설을 통해 막말이 난무하는 국내 정치판을 ‘좋은 말’로 정화하는 길을 모색한다.

초점의 대상은 다르지만 두 책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삶은 우리가 자주 내뱉는 말과 같아질 것이라고. ‘있던 가능성’조차 없애는 나쁜 말과 달리 좋은 말은 다른 생각과 의견을 포용해 ‘가능의 공간’을 넓힌다고.

‘말의 트렌드’는 세대 간 소통 단절의 책임을 가벼운 ‘디지털 언어’를 사용하는 젊은 세대에 돌리는 시각에 반대한다. 일부 청년들의 낮은 문해력에 디지털 세대의 언어 습관을 ‘낯설고 과격한 것’으로 치부하는 기성세대의 무심함이 더해져 소통 단절을 낳는다는 것이다.

SNS의 언어 언급량·증감률을 분석하는 저자는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분좋카(분위기 좋은 카페)’ ‘별다줄(별걸 다 줄인다)’ 같은 줄임말이 특정 집단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말이라고 설명한다.

고등학생들이 ‘편도(편의점 도시락)’나 ‘삼김(삼각김밥)’ 등의 줄임말을 자주 쓰는 건 시간에 쫓겨 편의점에서 끼니를 대충 때우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무배(무료배송)’ ‘무나(무료나눔)’ ‘택포(택배비 포함)’ 같은 줄임말이 낯설다면 온라인 물물교환을 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스타벅스를 ‘스벅’으로, 올리브영을 ‘올영’으로 부르는 이들은 줄임말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저자는 “누군가에겐 ‘별것’으로 보이는 줄임말이 어떤 집단에겐 편리한 ‘단축키’ 같은 존재”라며 “줄임말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그 세대 또는 집단을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등장해 영역을 확장하는 접두사는 시대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혼밥’ ‘혼술’ ‘혼영’ 등 수많은 ‘혼자’의 변주들은 오랜 기간 정상성의 기준이 ‘함께’에 있었던 탓에 주목도가 높아졌으나 언젠가 ‘혼자’가 기본값인 사회가 되면 ‘함께’를 의미하는 새로운 접두사가 나올지 모른다.

두 단어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언어’에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스며 있다. ‘육아 퇴근’은 육아도 퇴근이 필요한 과업이라는 것, ‘햇살 맛집’과 ‘야경 맛집’은 꼭 음식이 아니어도 자신만의 주특기가 있으면 맛집이 될 수 있다는 것, ‘얼굴 천재’는 천재가 지식의 영역에서만 탄생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또 MZ세대의 문해력을 문제 삼는 기성세대를 향해 “새로운 언어인 ‘밈(meme)’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라고 반문하며 텍스트를 읽어내는 문해력과 시대 흐름을 꿰뚫는 밈해력은 함께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말의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단순히 신조어를 많이 습득하는 일이 아니라 시대의 감수성에 발맞추는 일이다.”

다만 저자가 모든 새 언어를 긍정하는 건 아니다. ‘맘충’ ‘발암 캐릭터’ 같은 혐오 표현은 물론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처럼 계급화를 부추기는 말에도 부정적이다. 저자는 “어떤 말을 사용하자는 선언보다 어떤 말은 사용하지 말자는 다짐이 더 중요하다”며 나쁜 언어를 몰아내는 효율적인 방법은 ‘고쳐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웃수저(타고나길 웃긴 사람)’ ‘근수저(체질적으로 근육이 잘 붙는 사람)’ 등의 새로운 조합을 통해 ‘(금·은·흙)수저’에 담긴 씁쓸한 계급 구분의 맥락을 희석한 것이 좋은 예다.

‘말의 트렌드’가 MZ세대의 언어 생태계에 주목한다면, ‘정치적 말의 힘’은 진영 논리가 극렬히 대립하는 국내 정치에 포커스를 맞춘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정치 언어를 가진 정치가를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공적으로 발언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인데, 한국 정치인의 입에선 ‘수사하라’ ‘처벌하라’ 같은 공안(公安) 담론이나 ‘끝까지 두고 보겠다’는 식의 전투적 용어가 쏟아진다. ‘나쁜 말’의 경쟁 체제는 타협과 합의가 요체인 의회를 조정 불가능한 싸움판으로 만든다.

책은 우리 정치판을 오염시키는 구체적 사례를 나열하는 대신 위대한 정치가들이 남긴 ‘아름다운 말’로 눈길을 돌린다. 1940년 런던 공습 위기에 시민들의 공포를 잠재운 처칠의 연설, 흑인 투표권 보장의 갈림길에서 국민을 설득한 린든 존슨의 용기, 과격한 이분법을 지양한 오바마의 유려한 화술을 통해 한국 정치가 갖춰야 할 품격 있는 언어를 고민하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적 목적을 갖는 말이라 해도, 사실성의 기반이 튼튼해야 하고 표현은 아름다워야 한다”며 “말이 나쁜 정치가를 퇴출하는 것이 최우선의 시민적 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상과 정치의 언어를 탐구한 두 책은 말이 지니는 힘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박상훈의 명쾌한 정리처럼 말 때문에 인간은 동물 이상의 존재도, 야수보다 잔혹한 존재도 될 수 있다. 좋은 말은 좋은 사람을 만든다. 좋은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각 권 340쪽·1만6800원, 400쪽·2만1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