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현대사상가 우치다 다쓰루
국제관계 · 한일 내부 상황 외
개인에게 적용해도 마찬가지
일본 접대문화 자본주의적 변질
평화헌법 개헌도 ‘퇴화’일 뿐
문해력 저하 세태 심각한 수준
똑똑함보다 ‘강인한 지성’ 필요
“‘통합’ ‘통일’ 이런 말 이미 낡았죠. 아시겠지만, 저걸 강조하는 사람들이 더 편을 가르고, 싸우잖아요. 차라리 ‘저 싫은 녀석과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빨리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합니다. 국제관계도 그렇고, 한국과 일본 내부 상황에, 또 우리 개인에게 적용해도 다 마찬가지입니다.”일본을 대표하는 현대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72·內田樹) 고베여대 명예교수의 시대 진단이자 생존법이다. ‘지한파’였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의 ‘브레인’이자 문부과학성(교육부)의 고문격이기도 했던 우치다 교수는 50여 권의 저서를 내고, 십수 년 전부터 출판과 강연 등으로 꾸준히 한국을 오갔다.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이 뚫린 최근,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그를 서울 중구 문화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은 강연 일정으로 꽉 차 있었다.
“리더 국가도 없고, 국가 안에 리더도 없죠.” 이날 우치다 교수는 “세계가 점점 다극화(多極化), 카오스(혼돈) 상태가 돼 간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는 “팬데믹이 자본주의와 환경 파괴 등을 반성하게 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게 한 것처럼 ‘카오스’ 안에서 우린 또 길을 찾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최소한 이것 하나만 맞추자’라는 생각으로 대화해야죠. 하나의 사상이나 취향으로 거대한 집단이 생기는 일은 이미 줄었고, 앞으로 더 그럴 테니까요.”
정치, 경제, 철학, 문학 등 영역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 성역 없는 비평으로 유명한 그는 지난달에만 일본 현지 매체에 세계정세를 분석한 ‘세 개의 시나리오’, 일본 사회를 비판한 ‘접대와 환대’, 헌법 개헌에 반대한 ‘헌법공언론(憲法空言論)’ 등의 글을 써 기고했다. 우치다 교수는 중요하지만 어려워서 눈감는 세상의 진실과 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에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미·중·러가 모두 쇠퇴하고 세계는 오히려 ‘나은’ 혼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예측했으며, “일본의 유명한 접대 문화가 점점 상대의 조건에 따른 환대, 즉 매우 자본주의적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평화헌법 개헌에 대해선 “인간은 본래 악하니까, 그 ‘낮은’ 수준에 맞춰 살자고 주장하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다양한 글을, 쉼 없이 쏟아낸다. 얼마나, 어떻게, 지식과 지성을 쌓으면 가능한 일일까. 독서법이나 글쓰기론 강연도 자주 하는 그는 이날 “쓰는 것과 읽는 것을 8대2의 비율로 한다. 새로운 인풋(input)보다는 추억과 기억 속에서 관련 소재를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에 보면 미스 마플이 문제 해결을 그렇게 하죠. ‘아, 맞아! 비슷한 사건이 과거에도 있었지!’ 하는 식으로요.” 그는 우리 모두 ‘기억의 아카이브’를 갖고 있지만, 잘 활용하지 못할 뿐이라고, 찾으려고 하면 반드시 떠오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디지털화가 가속화하고 점점 복잡해지는 지금의 세계에선 “‘날 선 지성’보다 ‘강인한 지성’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날 선 지성은 일본어로 ‘머리가 좋다’, 강인한 지성은 ‘머리가 강하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머리 좋은 사람은 널렸지만, 머리가 강한 사람은 드물다”며 “쉬운 결론을 채택해서 지적 부하를 빨리 해결해 버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힘, 복잡한 걸 복잡하게 이해할 수 있는 힘, 그것이 ‘강인한 지성’이다”고 설명했다. 우치다 교수는 이 ‘강인한 지성’이라는 덕목이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인들에게 요구된다고 힘줘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강인한 지성’을 갖춘 언론은 기사를 ‘상품화’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상품이란 독자가 필요로 하는 것만을 쓰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언론이라면 ‘당신은 지금 이런 걸 필요로 해야 해, 알아야 해, 원해야 해’라고, 그리고 ‘제발 읽어달라’는 간절함이 깃든 기사를 써야죠. 독자를 일깨우지 못하면 그 글이 무슨 소용입니까.”
일본 정부나 미디어에 거침없이 ‘쓴소리’를 해온 그는, 문해력이 저하되고 있는 세태, 다시 말해 디지털 시대에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독자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최근 한국의 한 대학에서 ‘디지털 시대의 리터러시-지성의 역할’을 주제로 온라인 강의를 한 바 있는 우치다 교수는, 이날 ‘심심한 사과’ ‘사흘’ 논쟁 등 한국에서의 문해력 논란 일화를 듣더니, “읽는 이들은 왜 사전을 찾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자신이 아는 말과 단어만을 고집하면서 화를 내는 건 이미 기사를 ‘등가교환’의 상품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다. 나에게 맞는 물건을 달라는 심보다”고 지적했다. “지성이라면, 특히 글 쓰는 이라면, 이 부분을 양보해선 안 된다고 전 늘 말합니다. 문해력이란 올리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낮아졌으니까 그 상태로 맞춰서 쓰자, 말하자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치다 교수는 2020년 문화일보 특별기획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에서 ‘세계와 나 그리고 소명’을 주제로 팬데믹으로 달라지는 세계, 코로나19 이후를 예측한 바 있다. 당시 원고를 보여줬더니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더니 “코로나19 초창기의 글이라 지금 보니 오히려 재밌다”며 웃었다. 그는 일부 예측이 빗나간 것도 언급했다. 그는 당시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군사행동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니 내가 완전히 틀렸다”며 겸연쩍어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치다 교수는 자신이 직접 무술과 철학을 가르치는 ‘개풍관’의 문을 오랫동안 닫아야 했다. 50여 년 합기도 수련을 해 온 그는 그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한다. 감염자가 급속하게 늘어날 때는 두 달 정도 쉬었다. 대신, 한글 공부를 수련 삼아 했다. “책 읽고, 원고 쓰고, 한글 공부하고, 그리고 한국 드라마를 수십 편 봤어요.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왔어도 낯설지 않네요. 어제까지 서울에 있었던 것만 같아요. 하하.”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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