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안인터뷰 -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
현장 CCTV 모니터링했어도
‘이태원 참사’ 막을 수 있었다
진보 · 보수 집회 대응하다보니
2주 전부터 예고된 인파 집중
청년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이태원 참사 불러온 주요 원인
미국선 911에 모든 신고 가능
우리나라는 112 · 119 헷갈려
조적조 학교 내진 성능 부족
관리 부실 저수지 붕괴 우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서울 이태원 주변에 55개가량의 CCTV가 있다고 하죠. 모니터링하고 상황전달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충분히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사전 징후 감지 미흡, 사전 대비 부족, 대응 미숙 상황을 보면, 이번 참사는 확실히 ‘후진국형 사고’라 할 수 있습니다.”
정상만(66)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과정과 사후 수습 과정을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 원장은 청년 문화에 대한 공무원의 이해 부족이 안일한 대비로 이어져 인파 집중을 분산하기 위한 기획, 모니터링 등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소방 간의 협업·교류가 유기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현 시스템을 비판하며 112·119 신고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선 911에 모든 신고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시민들이 급한 상황에서 112로 신고할지, 119로 신고할지 정해야 한다”고 현재의 신고 체계를 비판했다. 정 원장은 예방 대신 ‘사후 수습’ 일색인 현재 재난관리 체계를 문제 삼으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재난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잠재적 재난으로 지진에 의한 학교 시설 붕괴, 농업용 저수지 붕괴,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 등을 꼽았다. 그는 사전 대책이 사후 수습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진행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후진국형 사고’라고 언급한 것으로 아는데, 후진국형 사고는 무엇인가.
“압사 사고 자체가 후진국형 사고인 건 아니다. 압사 사고는 후진국이나 선진국, 어디서든 일어난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발생·수습 과정이 후진국형이었다는 거다. 구체적으로 △사전 징후에 대한 감지 부족 △사전 대비 미흡 △대응 조치 미숙 등이 세계 경제 순위 10위권에 달하는 국가 수준에 맞지 않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일으킨 주요 원인 세 가지를 꼽아달라.
“사고 발생 징후가 있었다. 핼러윈 행사는 2주 전부터 예고돼 있었고, 많은 인파가 집중될 것이 예측되던 상태였다. 그런데도 행정당국과 지방자치단체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 이건 결국, 청년 문화에 대한 공무원들의 이해 부족에 따른 결과다. 이미 핼러윈 축제가 청년 문화에선 깊숙이 전파됐는데 행정당국, 특히 정책 지도자들은 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진보·보수 진영의 집회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달리, 핼러윈 축제엔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전 대비보다는 대응, 복구 등 사후 수습 중심으로 재난 관리 시스템이 운영되는 점도 문제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지자체·경찰·소방 등 다양한 기관에 대한 여러 지적이 제기된다.
“맞다. 이태원 주변에 55개의 CCTV가 있다. 모니터링을 통해 상황전달시스템이 작동되면 밀집 방지 대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답답하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행정안전부가 1조50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해 4세대(G) 무선통신기술이 적용된 국가재난안전통신망(PS-LTE)을 만들었다. 그런데 경찰, 소방, 지자체, 해경 등 재난 관련 업무를 맡는 기관이 소통할 수 있는 전국 단일 통신망인 이 기술이 활용되지 못했다. 만약 PS-LTE 통신망에 연결된 무전기를 사용했으면 현장에 출동한 각 기관의 직원들이 빠르게 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인파 분산을 위해 일방통행 유도를 하거나 지하철 무정차 운행을 하지 않은 점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현장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에 대한 문제 지적도 많았다.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나.
“우리나라는 부처·기관 간 벽이 굳건해 협업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관할 구역이나 소관 업무에서 재난이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지자체장, 구청장, 소방서장, 해양경찰서장 등은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하지만 경찰서장은 보고 의무가 없다. 이번 이태원 핼러윈 참사 때도 사고 전 11건의 관련 신고가 들어왔지만, 행안부 상황실엔 전달되지 않았다. 또 기관 간의 엄청난 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19·112 신고다. 미국에선 911에 모든 신고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시민들이 급한 상황에서 112로 신고할지, 119로 신고할지 정해야 한다. (서비스) 공급자가 알아서 하는 게 맞다. 보고 체계를 단순화해 유관 기관 수장들에게 동시에 보고 되는 체계를 갖춰야 하며, 보고 시스템을 이중화해야 한다. 전기가 끊어지는 등 비상 상황이 닥쳤을 때, A라는 시스템이 안 되면 B라는 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도록 이중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자체가 이태원 핼러윈 축제처럼 ‘주최자 없는 행사’의 안전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는데.
“주최자가 명확하면, 안전 관리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명확해져 안전 관리 대책이 적절히 작동될 수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주최자가 없는 행사일수록 행정당국과 지자체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표준 매뉴얼, 실무 매뉴얼, 행동 요령 등 매뉴얼이 많은 나라다. 매뉴얼은 주최자가 없어도 지자체의 안전 관리를 가능케 하는 요소다. 이를 위해선 안전 관련 기관·부처 간에 유기적인 협업이 이뤄지도록 조직·법·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일각에선 개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인파가 밀집한 곳엔 애초에 진입하지 않거나 미리 빠져나왔어야 했다는 거다.
“물론 개인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지만 인파 밀집에 대한 정보를 국가가 미리 제공했어야 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책무가 있으므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안전 관련 정보를 개인에게 제공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면 개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사후 수습이 아니라 사전 대책을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은.
“사후 수습보다 사전 대책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사전에 비상사태를 선포, 사후 특별재난지역 선포 두 가지를 놓고 비교해보자. 과거 미국에서 플로리다·조지아·사우스캐롤라이나·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허리케인 상륙 나흘 전에 미리 모여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은 적이 있다. 당시 차량 200만~300만 대가 줄지어 위험 지역을 빠져나갔다. 사후 수습보다 사전 대비가 훨씬 경제적이라는 인식을 국민과 국가가 가진 거다. 재난안전 분야 투자의 30%를 사전 대책에, 70%를 사후 대책에 쏟는 것은 ‘후진국형 재난 관리’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언제든 문제 될 수 있는 재난 분야가 있다면.
“지진에 의한 학교 시설 붕괴가 우려된다.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을 쌓아 만드는 ‘조적조 건물’은 내진 성능이 부족해 지진 발생 시 제일 먼저 무너진다. 이젠 안전 등급이 낮은 학교 건물들이 많진 않지만, 우리 아이들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 있게 살펴야 할 문제다. 이게 ‘아이들 점심값을 누가 대느냐’보다 더 중요하다. 또 농업용 저수지 붕괴 가능성도 문제다. 다목적 댐이나 규모가 있는 농업용 저수지는 각각 한국수자원공사와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해 비교적 안전하다. 그런데 중소 규모 농업용 저수지는 각 시군에서 관리한다. 1만 개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지어진 지 40~60년 됐다. 안타깝게도 농업용 저수지 관리는 지자체의 예산 투입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기 어렵다. 우리 부모님들이 속절없이 희생당할 수 있어 걱정이 크다. 마지막이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다. 이미 매년 40명 이상씩 사망하고 있다. 하지만 대책은 순간적·단편적으로만 마련되고 있다. 잘못되면 대형 재난으로 번질 수 있는 문제다.”
―향후 어떤 형태의 재난이 대두할 것으로 보나.
“기후 변화를 가장 먼저 꼽겠다. 홍수가 나지 않던 곳에 홍수가 나고, 가뭄이 없던 곳에 가뭄이 발생한다. 여름 폭염과 겨울 폭설·한파는 꼭 대비해야 하는 고질적 문제가 됐다. 기후 변화가 우리 일상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일종의 조립식 건물인 PEB(철골) 건물은 적설에 취약하지만 경제적이라 우리나라에 많이 지어졌다. 이런 빌딩들이 기후 변화로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엔 눈이 10월 말에서 2월 초순까지 왔지만, 요새는 5월까지도 온다. 영하의 기온에서 오는 눈은 ‘건설’, 영상 기온에서 쌓이는 눈은 ‘습설’이라고 한다. 습설의 무게는 건설의 2배다. 즉, 3~5월에 오는 눈은 그 전에 오는 눈보다 2배 무겁다. 그동안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PEB 건물을 많이 만들었다. 또 사회재난 분야에선 전염병이 앞으로도 계속 문제 될 것이다. 특히 사회구조가 변화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동물로부터 옮겨지는 인수전염병이 계속 창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환경 파괴로 인한 생물 다양성 손실이 먼 미래엔 주요 재난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생물 다양성 손실은 식량 위기, 산소 부족 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테러와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대한 대응, 적응이 필요하겠다.”
■ 정상만 원장은
방재 분야 최고 전문가… “사후 특별재난지역 지정 소용없어”
행정안전부 중앙재난관리평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방재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정상만(66)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은 재난안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후 수습보다 사전 예방에 국가 예산이 더 투입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국가·국민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재난안전 분야에 역점을 둘 수 있도록 정부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고 정 원장은 주장했다.
정 원장은 재난 관리에서 사전 예방이 사후 수습보다 훨씬 경제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허리케인이 오면 엘리베이터 전기까지 다 끊어버릴 만큼 강력한 방재 대책을 쓴다. 그만큼 예방, 대비가 대응, 수습보다 훨씬 값어치 있다는 인식을 국가와 국민 모두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서도 “사전 대비를 철저히 했으면 158명의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사후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아무리 많은 보상금을 지원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정 원장은 정부 조직 구성에서 이미 재난안전 분야가 도외시됐다고 보고 있다. 그는 “조직 운영을 보면, 재난안전 분야의 중요도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지금의 행안부는 행정과 안전 분야를 동시에 다루는데, 안전 분야는 독립적인 부처에서 다뤄야 한다. 또 지금 행정 분야에는 ‘차관’, 안전 분야에는 ‘차관급’인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있는데 이것도 문제다. 또 대통령실엔 재난안전 담당 비서관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재난관리 분야에 있어 우리나라의 조직·인사·제도는 ‘후진적’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 원장은 재난이 지역 중심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찰·소방 조직을 지방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찰에 대해 “경찰은 국가직이 아닌 자치경찰로 운영돼야 한다. 현재처럼 이중적으로(국가직, 자치경찰위원회) 운영될 필요가 전혀 없다. 선진국을 보면 지역 중심으로 운영되고, 재난·치안 수요도 지역 중심이다”라고 말했다.
△1956년 경남 진주 출생 △1981년 고려대 토목공학과 졸업 △1986년 미국 유타주립대 대학원 토목공학 석사 △1988년 미국 아이다호대 대학원 토목공학 박사 △2003년 제7대 공주대 공과대학장 △2010년 국립방재연구원 원장 △2013년 한국방재학회 회장 △2021년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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