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커티스 보태니컬 매거진’(vol.25)에 수록된 시클라멘 헤데리폴리움(Cyclamen hederifolium).
1807년 ‘커티스 보태니컬 매거진’(vol.25)에 수록된 시클라멘 헤데리폴리움(Cyclamen hederifolium).


■ 지식카페 - 박원순의 꽃의 문화사 - (21) 시클라멘

바퀴 · 동그라미 뜻하는 그리스어 ‘키클로스’서 유래… 대표적인 지중해 식물 약초 · 관상용으로 큰 인기
16세기 프랑스선 야생돼지들이 알뿌리 파먹어 ‘암퇘지빵’으로 불려… 19세기땐 크리스마스 장식용, 이스라엘은 나라꽃으로 선정


꽃이 귀한 겨울 동안 시클라멘은 실내 공간에서 분홍색, 빨간색, 하얀색, 자주색 등 화사한 꽃을 피운다. 춤을 추듯, 혹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가느다란 꽃자루에 매달린 섬세한 자태의 꽃들과 함께, 그 아래로는 연두색 바탕에 은빛 마블링 무늬가 들어가 있는 하트 모양 잎들이 풍성하게 자란다. 감사와 축복의 계절에 잘 어울리는 고마운 꽃이다.

앵초과에 속하는 시클라멘은 시리아, 이스라엘, 터키 등 중동 지역과,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등 유럽의 지중해 분지 지역, 그리고 로도스, 크레타 등 그리스 섬 지역에 23종이 분포한다. 종마다 서식 환경과 개화 시기, 내한성도 다양한데, 시클라멘 헤데리폴리움(C. hederifolium)과 시클라멘 푸르푸라스켄스(C. purpurascens)는 여름과 가을에, 시클라멘 페르시쿰(C. persicum)과 시클라멘 코움(C. coum)은 겨울에, 시클라멘 레판둠(C. repandum)은 봄에 꽃이 핀다.

영국 식물학자 존 시브소프가 쓴 ‘플로라 그라에카’(vol.II)에 수록된 시클라멘 라티폴리움 채색 판화.
영국 식물학자 존 시브소프가 쓴 ‘플로라 그라에카’(vol.II)에 수록된 시클라멘 라티폴리움 채색 판화.

시클라멘(Cyclamen)이라는 말은 원, 바퀴, 동그라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키클로스(kyklos)에서 유래했다. 둥글고 납작한 알뿌리 모양 때문이다. 이 알뿌리는 지하 저장기관의 일종으로 감자처럼 줄기가 비대해져 덩어리를 형성한 덩이줄기(tuber)다. 지중해 지역의 고온 건조한 여름 동안 잠을 자면서 생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덩이줄기 크기는 종마다 다른데, 큰 종류(C. hederifolium)는 지름이 어른 손으로 한 뼘 정도에 이르기도 하고 작은 종류(C. parviflorum)는 병뚜껑 크기만큼 작다.

다섯 장의 꽃잎은 대부분 위를 향해 젖혀져 있고, 암술과 수술이 있는 부분은 노출되어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꽃이 지면서 꽃줄기는 코일 또는 꽈배기처럼 비비 꼬이며 지면을 향한다. 땅에 씨를 뿌리기 좋게 하기 위해서다. 캡슐 모양의 동그란 열매가 개방되면서 땅에 떨어진 씨앗은 끈적거리는 물질로 덮여 있는데 개미가 이것을 좋아해서 씨앗을 개미굴로 운반한 뒤 그 물질을 먹고 씨앗은 그대로 둔다. 자연스럽게 땅속에 파종을 해주는 셈이다. 개미는 빛이 없는 조건이 되어야 발아하는 시클라멘 씨앗을 위해 필요한 도움을 주고, 그 보답으로 시클라멘은 개미에게 달콤한 먹이를 제공하여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상리공생이다.

시클라멘은 우리 인간에게도 매우 쓸모 있는 식물이다. 약초로 2000년, 관상용 식물로 4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세기경 그리스의 의사이자 식물학자 디오스코리데스는 자신의 저서 ‘약물지’(De Materia Medica)에서 그리스 시클라멘(C. graecum)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시클라멘 꽃 위로 걸으면 유산이 된다는 이야기부터 독사에 물렸을 때나 시력이 약해졌을 때, 또는 각종 피부 질환, 모발 재생 등에 약효가 있다는 내용이 수록되었다. 설사약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데 알뿌리에서 짜낸 즙을 아랫배와 방광, 항문 부위에 발라 주면 된다고 적혀 있다.

비슷한 시기 로마의 대(大)플리니우스도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서 시클라멘을 언급했다. 다른 약효와 더불어 물고기를 잡는 데 시클라멘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독성이 있는 덩이줄기 가루를 물에 뿌리면 중독된 물고기가 숨 쉬기 위해 수면 위로 떠올라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클라멘은 16세기 프랑스에 도입되면서 유럽에 첫발을 들였다. 야생 돼지들이 시클라멘 알뿌리를 파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암퇘지빵(sowbread)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시클라멘은 유럽에서 오랫동안 일부 식물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희귀하고 특별한 컬렉션으로 남아 있었다. 새로운 관상용 알뿌리에 대한 열렬한 수집가로 1659년 ‘가든 북’(Garden Book)을 집필한 토머스 핸머(Thomas Hanmer)는 프랑스에서 어렵게 구한 시클라멘 알뿌리를 자신의 정원에서 정성껏 길렀다.

시클라멘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서야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주로 크리스마스 시즌 실내를 장식하는 용도였다. 19세기 후반엔 영국과 네덜란드 육종가들이 분홍색, 보라색 시클라멘(C. persicum)으로부터 새로운 품종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꽃이 더 커졌고 색깔은 더 다채로워졌다. ‘플로리스트의 시클라멘’(Florist’s Cyclamen)이라 불리는 이 품종들은 대부분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전 세계 거대한 규모로 성장한 크리스마스 시즌 꽃시장의 주역이기도 하다. 19세기 말엔 실내용 시클라멘뿐 아니라 야외용 시클라멘도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미술 공예 운동을 이끌며 자연주의 정원을 주창한 영국의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은 웨스트서식스에 있는 그래비티 저택(Gravetye Manor) 정원에 가을에 꽃피는 400본의 시클라멘을 프랑스에서 들여와 심었다.

독일의 조각가이자 박물학자인 게오르크 볼프강 크노르가 제작한 시클라멘 푸르푸라스켄스 판화 작품.
독일의 조각가이자 박물학자인 게오르크 볼프강 크노르가 제작한 시클라멘 푸르푸라스켄스 판화 작품.
유럽에 소개된 이후 시클라멘은 예술가들의 관심도 꾸준히 받아 왔다. 16세기 초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매료되어 여러 필사본의 테두리 문양 장식에 시클라멘을 사용했고, 17세기 루이 14세는 베르사유궁전의 실내 꽃 장식에 다른 꽃들과 함께 시클라멘을 사용했다. 19세기 프랑스 낭시파(Ecole de Nancy) 창시자로 아르누보 예술 운동을 이끈 에밀 갈레(Emile Galle·1846∼1904)는 유리공예와 판화, 섬세한 가구 문양에 시클라멘을 새겨 넣었다.

한편 지중해 지역에 자라는 원종 시클라멘 종류는 그간 무분별한 개발과 식물 사냥꾼들의 불법 채취로 인해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도 가속화되고 있다. 다행히 현지에서 서식지 보전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여 야생 개체 보전과 씨앗 파종을 통한 증식, 복원 사업 등 지속 가능한 관리를 위한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클라멘의 주요 원산지 국가 중 하나인 이스라엘에서는 2007년 국민투표를 통해 시클라멘을 나라꽃으로 선정하여 특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오늘날 시클라멘의 새로운 품종들은 꽃이 더 오래가고 추위에 더 강해지게 되었다. 꽃 색깔도 더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두 가지 색깔이 혼합된 품종들도 나왔다. 꽃잎 모양도 주름이 지거나, 겹꽃이거나, 향기를 지닌 품종이 개발되었고, 잎의 색깔과 모양, 무늬도 선택의 폭이 더 넓어져서 꽃이 피지 않을 땐 잎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관상 가치를 지닌다. 잎이 아이비 같은 종류도 있고 거의 둥그렇거나 심장 모양, 또는 삼각 모양을 가진 종류도 있다. 대부분 초록색과 은색이 뒤섞인 독특한 무늬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시클라멘 코움은 잎에 새겨진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무늬가 인상적이다. 시클라멘 헤데리폴리움 ‘실버 텅드 데빌’(C. hederifolium ‘Siver Tongued Devil’) 역시 은빛 잎이 매우 아름다우면서 내한성도 아주 강해 영하 20도까지도 끄떡없다.

대표적인 지중해 식물인 시클라멘(C. persicum)은 덥고 건조한 여름엔 잠을 자고, 선선하고 습한 겨울에 깨어 있는 식물이다. 여름철 덩이줄기가 잠을 자는 동안 토양 배수만 잘된다면 전 세계 다양한 기후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 꽃피는 겨울엔 서늘하고 공중 습도가 높으며 간접광이 밝게 비치는 환경을 좋아한다. 낮에는 15∼21도 밤에는 10도 정도의 온도가 좋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잎이 누렇게 변하고 꽃이 빨리 진다. 물은 겉흙이 말랐을 때마다 주되 식물체 중심부나 잎에는 물이 묻지 않도록 한다. 특히 화분이 계속 축축하면 뿌리가 썩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건조한 실내에서 키운다면 물과 자갈을 채운 트레이 위에 화분을 두고 관리하면 시클라멘 화분 주변으로 높은 공중 습도를 유지하기 좋다.

겨우내 화사한 꽃과 잎을 선보인 시클라멘은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새잎과 꽃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남아 있는 잎들도 점점 누렇게 시들어간다. 마치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잠을 자러 갈 시간인 것이다. 물을 점점 줄여 가다가 완전히 휴면에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물과 거름을 주지 말고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시원하고 건조한 장소로 옮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오면 9월쯤 다시 물을 주기 시작하여 잠을 깨운다. 잎이 한창 자랄 때 2주에 한 번 약한 액비를 주면 좋다. 화분이 밖에 있다면 겨울이 되기 전에 실내로 들여야 한다.

시클라멘은 씨앗으로 번식할 수도 있지만 덩이줄기를 잘 관리하면 매년 꽃을 볼 수 있다. 뿌리가 화분에 너무 꽉 차 있으면 약간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고, 분갈이 직후에는 그늘지고 건조한 곳에 둔다. 시클라멘은 유기질이 풍부하고 배수가 잘되는 약산성 토양을 좋아하는데 화분에 키울 때는 일반 원예상토에 약간의 피트모스를 섞어 산도를 높인다. 잘만 관리하면 수십 년에서 100년까지도 키울 수 있다. 병해충은 줄기와 새싹에 진딧물, 줄기와 잎 사이에 응애를 조심한다.

시클라멘의 덩이줄기엔 독성 사포닌 종류가 함유되어 있지만 중동 일부 지역에서는 덩이줄기를 말린 다음 구워 먹기도 하고 꽃잎을 차로 우려 마시기도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시클라멘의 매력은 겨울철 실내 공간을 화사하게 밝혀 주는 데 있다. 겨울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놓인 시클라멘 화분은 마치 미술관의 그림 작품처럼 아름답다. 시클라멘은 겸손과 수줍음, 작별을 상징하므로 누군가의 은퇴와 졸업에도 잘 어울리는 꽃 선물이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 시클라멘(Cyclamen persicum)

터키, 레바논, 시리아의 비탈진 암석지, 관목 지대, 숲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덩이줄기 식물로, 북아프리카에서 서아시아, 유럽 남동부까지 확장되어 널리 분포한다. 오늘날 유통되는 수많은 관상용 시클라멘 재배 품종들의 모본이 되어, ‘플로리스트의 시클라멘’이라 불린다. 겨울 개화기에는 밝은 곳에서 13∼16도 정도의 온도와 적절한 습도를 유지해 준다. 여름 휴면기에는 2∼3개월 동안 건조하게 관리하다가 가을에 새로 잎이 나기 시작할 무렵 다시 물과 거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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