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열, 숲, 85×20×95㎝, 대리석, 2014.
박헌열, 숲, 85×20×95㎝, 대리석, 2014.


이재언 미술평론가

세렌디피티(serendipity).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발명이나 발견’이라는 의미로 모 가수의 노래나 영화로도 많이 알려진 단어이다. 예술가나 과학자들에게는 중요한 능력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우연이나 행운으로 얻어지는 것 같지만, 평소 잘 다져진 소양이나 내공의 결과가 우연의 얼굴을 하고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조각가 박헌열의 ‘빛이 있는 풍경 조각’을 보자. 그의 조각은 바깥보다는 안에 콘텐츠를 더 집중해서 담고 있는 석굴 같은 오목 혹은 네거티브 양식, 그리고 대리석 박막(薄膜) 배면 조명으로 내부에 빛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풍경 조각의 두 축이 동시에 획기적으로 성취됐다는 것은 우연이면서도 필연이다.

어려서부터 고향 경주의 석굴암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작가의 기억이 소환된다. 석실 안에 안치된 조각상들에서 받은 영감의 묵상, 그리고 본존상 이마를 통해 빛이 석실 전체를 비추었다는 설화. 외향적 조각 공간의 전복(顚覆)과 빛의 구현이라는 발명 세트는 숲으로 재구성, 법열이 되고 치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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