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상속 인문학 멘토를 만나다 (上)
‘니은서점’ 주인장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인문학 가치 함께 나누고 싶어
서점 열고 북토크 · 토론 등 마련
인문 · 사회 · 예술 서적들만 모아
학습서 · 투자지침서는 거의없어
“목적 없는 책 읽기가 ‘교양독서’
책 속 지식, 인격으로 전환되길”
인문학과 인문 정신의 위기다. 독서 인구는 갈수록 줄고 있고, 대학가에선 인문학 관련 학과를 통폐합하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문해력이 저하되면서 소통의 어려움 또한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물리적 단절은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 확대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에게 인문 가치 확산을 통한 인간성 회복이 절실한 이유다. 이에 ‘일상 속 인문학 멘토’와 함께 인문 정신으로 내면을 고양하는 삶을 모색하는 기획 시리즈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책방을 운영하는 사회학자 노명우를 시작으로 인문학교 ‘새말새몸짓’을 설립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철학책 독서 모임을 이끄는 출판 편집자 박동수가 멘토로 나선다.
“사회학자에게 책방은 대학과 사회를 잇는 공간입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시대와 호흡하는 ‘인문학의 본령’을 생각합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2018년 9월 서울 은평구에 ‘니은서점’을 열었다. 성(姓)의 자음 발음을 딴 서점은 인근 가게들이 잇따라 폐업하는 와중에도 4년 넘게 굳건히 버티고 있다. 두 해 전엔 책방과 연구실을 오가며 ‘자영업자 교수’로 보낸 시간을 담은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클)을 펴내기도 했다. 노 교수는 ‘지속 가능한 적자’가 이어지고 있기에 “잘될지 모르는 건 여전히 꿈”이라면서도 “은평구 골목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지난달 30일 니은서점을 찾아가 노 교수를 만났다. ‘인생극장’ ‘세상 물정의 사회학’ 등을 출간한 그는 책방 지기로, 칼럼니스트로 대중과 소통하는 대표적인 ‘일상 속 인문학 멘토’ 중 한 명이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대학은 사회가 요청하는 질문과 연결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취업을 위한 ‘전문기관’으로 변질된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노 교수는 인문학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돌파구로 서점을 선택했다. 한동안 독립서점의 ‘필수 아이템’인 북토크 행사는 물론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 것 역시 더 많은 독자를 만나려는 시도였다.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최근 화두로 떠오른 문해력 향상도 힘들다는 게 노 교수의 생각이다.

그가 제안하는 비법은 ‘실용 독서’가 아닌 ‘교양 독서’다. “정보를 습득하는 실용 독서는 문해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사회학자가 연구를 위해 전공 서적을 읽는 것도 실용 독서입니다. 반면 교양 독서는 목적 없는 책 읽기이자 전공 분야가 아닌 텍스트 읽기입니다.” 그는 “전문 지식이 현미경으로 좁은 분야를 들여다보며 쌓는 것이라면 교양은 현미경만으로는 놓칠 수 있는 지식 사이의 ‘상호 연결’을 조망하는 시야를 제공한다”며 “교양 독서에 익숙한 ‘교양인’만이 혼자 잘되는 게 아니라 함께 잘 살고자 하는 욕망에 눈 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니은서점의 ‘북 큐레이션’에도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교양 독서로 이끌고 싶은 주인의 바람이 담겨 있다. 10평 남짓한 공간이 1000여 권의 책으로 가득하지만 투자 지침서나 학습서, 여행 책 같은 실용 도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인문·사회·예술 서적만 펼쳐져 있다. “공간이 한정된 독립서점은 ‘큐레이션 서점’이 될 수밖에 없어요. 니은서점이 고유한 기준으로 고른 책들은 자신만의 보석을 발굴하고 싶은 독자를 위한 ‘컬렉션’입니다. 판매용 도서들 사이에 ‘공유서재’라는 스티커가 붙은 책들이 있어요. 한때 열심히 읽은 책들이라 밑줄도 그어져 있고, 포스트잇도 붙어 있죠. 대형 서점에선 얻기 힘든 특별한 독서 체험을 나누고 싶어 떠올린 아이디어입니다.”
니은서점은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매주 진행하던 북토크와 라이브 방송을 중단했다. 대신 올해 1월부터 교양 독서가 콘셉트인 ‘니은서점 생각학교’를 줌(zoom)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노 교수가 직접 책을 선정해 그에 대한 올바른 독서법을 수강생들에게 강의하는 형식이다. 현재까지 약 170명이 참여한 생각학교는 2025년까지 이어진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게오르크 짐멜의 ‘돈의 철학’처럼 언젠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아직 읽지 않은 책, 안 읽고도 읽은 척 해왔던 책을 떠올리며 생각학교의 ‘교과서 리스트’를 만들어요. 책에서 얻은 지식이 인격과 교양으로 전환되는 학교가 되길 소망합니다.”
노 교수는 독서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건 ‘책을 읽던 사람’이 떠나서가 아니라 ‘신규 독자’가 유입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규 독자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책 읽기 캠페인’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캠페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독서에 대한 즐거운 기억이 없는 탓이라는 얘기다.
“어릴 때부터 강요와 압박을 못 이겨 억지로 책을 펼쳤으니 독서가 싫은 게 당연하죠. 감동적인 오페라 한 편을 보면 옆에서 뜯어말려도 ‘공연 마니아’가 되듯, 깊이 빠져드는 책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독서광’으로 성장합니다. 니은서점이 책에 진심인 열성 독자를 위한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 시집만… 역사책만… 독서 생태계 다지는 ‘그들만의 서가’
위트앤시니컬 · 소요서가 등
인문 책방 표방한 전문서점
사회학자 노명우가 운영하는 니은서점처럼 인문 책방을 표방한 서점은 여럿 있다. 책보다 간편하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이들 서점은 뚜렷한 개성과 색채로 독서 생태계를 가꾸는 데 소중한 보탬이 되고 있다.
서울 대학로 동양서림 2층에 자리한 ‘위트앤시니컬’은 시집 전문 서점이다. 책방 주인은 시집 ‘오늘 아침 단어’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과 산문집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등을 출간한 유희경 시인. 서점에 진열된 2000여 종의 도서 대부분이 시집이며, 문학과지성사·민음사 등 국내 출판사가 출간한 시집은 물론 외국 시집도 두루 갖췄다. 위트앤시니컬은 대학로 파랑새극장과 공동기획한 북토크 행사를 매달 한 차례씩 진행하고 있으며, 여러 시인을 강사로 초빙해 ‘시 창작 강의’도 열고 있다. 유 시인은 2016년부터 신촌역 인근에서 서점을 운영하다 4년 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인 동양서림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7월 을지로에 문을 연 ‘소요서가’는 국내 최초의 철학 전문서점이다. 서양철학·동양철학·정치철학·종교철학·과학철학·미학·페미니즘 등 주제별로 나뉜 서가엔 3000권 이상의 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소요서가는 서점인 동시에 책을 펴내는 출판사이자 강연을 하는 아카데미이기도 하다. ‘서점-출판사-아카데미’로 이어지는 인문 공간을 운영하는 주체는 ‘연구소 오늘’. 2021년 봄 출범한 연구소로 철학 전공자, 출판인, 회계사, 미술 교육자 등 다양한 직업의 운영진으로 구성돼 있다. 사적 인연으로 맺어진 이들은 책을 함께 읽는 공부 모임을 이어오다 연구소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출판은 철학적 개념을 만드는 일, 서점은 개념을 책이라는 물성과 함께 전시하는 것, 아카데미는 물성을 공유하며 다시 새로운 개념을 찾는 노력의 과정”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역사책방’은 이름처럼 역사책을 주로 판매한다. 서점을 운영하는 백영란 대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NHN과 LG유플러스에서 일하다 책방 지기로 변신했다. 역사가 국제 분쟁과 갈등의 뇌관인 만큼 이슈에 발맞춘 강연으로 ‘역사의 대중화’를 도모하는 것이 책방의 특징이다. 한·일 관계가 불편해지면 관련 전문가와 함께 일본 역사나 한·일 관계사에 대한 북토크를 여는 식이다. 이와 함께 북한학 전문 서점인 ‘이나영 책방’, 퀴어 책방을 표방한 ‘햇빛 서점’, 생태 도서를 취급하는 ‘산책아이’ 등도 책 애호가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인문 독립서점이다. 지난 10월 국내 책방의 통사를 다룬 ‘서점의 시대’를 쓴 역사 연구가 강성호는 “전문서점의 존재 의의는 책 자체의 전문성을 넘어 이야기와 가치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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