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카페 - 김헌 · 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1) 월드컵, 언더독의 반전

루쉰의 ‘고향’

힘이 달려서 못하는 ‘역부족’
스스로 물러나는 ‘자포자기’
뭔가 일구어내는 역량 ‘용기’

포기하는 순간 장벽 생겨나
한계를 긋지 않는 순간 전진


한달 가까이 치러진 카타르월드컵은 여느 대회 때보다도 흥미진진했다.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진출한 한국을 비롯해 벨기에와 포르투갈을 연파하고 4강에 오른 모로코, 아르헨티나를 깼던 사우디, 독일과 스페인을 거푸 잡은 일본 등 이른바 ‘언더독(underdog)’이 펼쳐낸 극적인 반전 덕분이었다.

특히 우리의 16강 진출은 더없이 감동적이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마음은 지난날 우리 축구의 동력이었던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유의 정신력과는 분명히 달랐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나’가 간절히 원했기에 했고, 그 절실함으로 얼마 안 되는 확률을 현실로 빚어냈다. 언더독의 반전이 그저 이변에 그치지 않은 까닭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긋는 태도와 무관하다. 공자는 시도조차 않은 채 불가능하다며 물러나는 태도를 “한계를 짓는” 행위라며 질타했다. 훗날 맹자는 이를 자포자기라고 표현했다. 공자는 스스로 한계 지음은 힘이 달려 못 하게 되는 “역부족”과 엄연히 다르다고 단언했다. 이를테면 “역부족은 나아가고자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계를 지음은 너끈히 나아갈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음이다. 한계를 지음은 땅바닥에 줄을 그어놓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해설로, 이에 따르면 한계를 두지 않는 순간 너끈히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근거가 확보되는 것이다.

한계를 긋지 않는 마음이 자신을 진작시키는 마음이었음이다. 내가 원해서 기꺼이 하는 마음, 그래서 꺾이지 않는 마음은 이처럼 내 안의 한계를 부정하는 능력을, 동시에 자신을 긍정하는 힘을 배양해낸다. 나아가 용기도 길러낸다. 우리의 16강 진출은 용기의 승리이기도 했다. 우리는 용기를 예컨대 패기처럼 굳세고 도전적이며 물러서지 않는 기상이나 정신쯤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공자는 용기를 “무언가를 일구어내는 역량”으로 이해했다. 그가 말한 용기는 어진 이는 반드시 용기를 지닌다고 할 때의 용기이자,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어짊과 지혜, 용기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을 때의 용기였다.

그것은 어짊을 구현해내는 역량이자 자기 삶의 주인이 되게끔 해주는 역량이다. 가령 효도를 하리라는 마음을 품는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효자가 되는 건 아니다. 효를 실천해야 비로소 효자가 된다. 어짊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어질다고 하여 저절로 어진 이가 되지는 않는다. 어진 마음을 행동으로 실현하지 않는 한 그가 어진 자인지를 알 수 없다. 마음속의 어짊이 바깥에서 구현되어야 비로소 그가 인자임을 알게 된다. 곧 마음을 현실로 일구어내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공자가 말한 용기는 바로 그러한 역량이다. 그것은 마음이 꺾이지 않고 간절히 원하는 바를 실현해냄의 미더운 동력이었다.

한편 꺾이지 않는 마음은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값지다. 근대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길이 나 있지 않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스스로 포기하는 순간 포기는 장벽이 되어 나를 견고하게 둘러싸곤 한다. 설령 길이 나 있지 않더라도 가고픈 곳이라면 길을 내며 가야 하는 이유다. 물론 길이 한번 지나갔다고 하여 바로 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땅 위에는 원래부터 길이란 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길이 된 것”(‘고향’)이라는 루쉰의 통찰처럼 한계를 긋지 않고 다니면 길은 나게 마련이다.

2002년 우리는 유럽과 남미에만 나 있던 월드컵 4강의 길을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에도 놓았다. 그리고 올해 모로코가 월드컵 4강으로 가는 아프리카의 길을 놓았다. 그 사이의 20년이 길다고 할 수도 있다. 길 하나 새로 놓는 데 20년씩이나 걸린다고 투덜댈 수도 있다. 그러나 길은 이렇듯 20년이란 시간마저 넘어서서 계속 이어진다. 길이 지닌 힘이다. 일희일비할 까닭이 없음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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