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 우크라전 10개월… 흔들리는 푸틴
‘전쟁과 집착’ 왜?
NYT “푸틴, 자기 과시에 빠져
독단적으로 우크라 전쟁 결정”
러 강경파 득세도 전쟁 부추겨
“표트르 대제 향한 지나친 존경
영토침공 파국 초래해” 분석도
‘매드맨 전략’ 끝은?
‘열흘만에 점령’ 큰소리 쳤지만
요충지서 잇단 퇴각, 수세 몰려
남미 도피설·암투병 등 루머도
“푸틴 대패해 정권종말” 관측 속
일각선 “서방과 거래 모색할 것”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오는 24일 만 10개월을 맞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역을 침공 열흘 만에 점령하겠다던 푸틴 대통령의 계획은 수포가 된 지 오래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남부 요충지 헤르손을 내준 데 이어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을 앞세워 2014년부터 실질적인 통치를 해왔던 동부 돈바스 지역 수성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사이 푸틴 대통령을 둘러싼 수많은 소문까지 양산됐다. 2012년 대통령 재취임 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연말 기자회견을 지난 12일 10년 만에 처음으로 취소하자 영국 더타임스는 “신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의 암살 시도를 피하려 몸을 숨겼다는 의혹이 불거졌는데, 한때 ‘철인’으로 불렸던 푸틴 대통령에겐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더 나아가 푸틴 대통령의 연설비서관 출신인 아바스 갈리야모프는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할 때를 대비해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 남미로 탈출하는 ‘노아의 방주’ 계획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췌장암과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루머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수세에 몰릴수록 더욱 전쟁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두문불출하던 그는 지난 16일 러시아 특수군사작전 지휘본부를 방문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고위간부들과 회의를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최대 우방국인 벨라루스를 3년 만에 찾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전 세계는 푸틴 대통령이 도대체 왜 이토록 우크라이나 점령에 목숨을 걸었는지, 무모한 도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리고 그의 ‘미치광이(madman)’ 전략의 끝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고 있다.
◇“내 말이 옳다” 독재자 함정에 빠진 푸틴…강경파 득세도 악영향 =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8일 단독 입수한 작전계획서, 포로일기 등을 통해 러시아군의 패퇴 원인을 분석하면서 푸틴 대통령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주목했다. NYT는 “푸틴 대통령은 자기과시와 반서방 프레임에 빠져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했다”며 “탱크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진격할 때 가장 가까운 보좌관들조차도 이를 몰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의미다.
결과는 참혹했다. NYT에 따르면 한 러시아군이 받은 작전명령서엔 “앞에 있는 차량만 따라가다 보면 18시간 이내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도착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고,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이 거세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실렸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러시아군은 빈약한 전략적 사고를 보여줬다”며 “이는 러시아 정치 체제의 한계, 푸틴 대통령의 실수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강경파들의 득세도 푸틴 대통령의 결정력을 흐리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러시아 용병 기업 ‘와그너그룹’ 소유주 예브게니 프리고진, 체첸공화국 수장 람잔 카디로프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러시아 정규군이 고전을 거듭하자 전면에 나서 군 지휘부를 비판하며 갈등을 일으켰다.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온건파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푸틴 대통령의 강경 대응을 부추겼으며, 전장에서도 제각각 작전을 펼쳐 조직력을 와해시켰다. 이탈리아 라레푸블리카는 “정규군과 비정규 민병대 사이에 깊은 균열이 감지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전세가 불리해질수록 강경파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지난 16일 열린 푸틴 대통령과 군 고위간부 회의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본인이 전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연출하려 한 것”이라며 “이런 홍보가 필요한 배경엔 자국 내 강경파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표트르 대제 추앙한 푸틴…멀어지는 제정 러시아 ‘차르’의 꿈 =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을 놓고 푸틴 대통령을 오랜 기간 분석했던 전문가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신중하고 계산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푸틴 대통령이 얻을 것이 별로 없는 전쟁을 선택했다는 이유에서다. 윌리엄 타우브만 미 애머스트칼리지 명예교수는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 기고문에서 “어떤 질병에 걸려 비이성적으로 사람이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은 타당하지 않다”며 그의 성장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의 표트르 1세(대제)를 향한 지나친 존경심이 이 같은 파국을 낳았다고 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젊은 경제인 및 과학자들과의 대화’에서 표트르 대제가 발트해에서 스웨덴과 벌인 대북방 전쟁을 언급하며 “표트르 대제가 무엇인가를 빼앗는 것이 아니고 되찾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가 새 수도(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할 때 유럽 어느 나라도 이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스웨덴 영토로 여겼다”며 “러시아 영토를 되찾고 강화하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표트르 대제를 빌려 정당화한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평소 집무실 책상에 표트르 대제 사진을 걸어놓고 동기부여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표트르 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시장을 지내며 역량을 키워왔다는 사실도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영국 더타임스는 러시아군이 남부 헤르손에서 철수한 뒤 푸틴 대통령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고 전했다. 더타임스는 “러시아에선 전쟁에서 실패한 차르를 용서하지 않는다”며 “푸틴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매드맨’의 끝은 어디일까? …정권 종말 vs 위기 극복 = 이제 관심은 푸틴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에 쏠려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푸틴 대통령의 거취도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이 대패해 정권이 몰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러시아 출신 언론인 레오니드 베르시드스키는 지난달 블룸버그통신 기고문에서 “푸틴 대통령은 전복 시도에 당할 만큼 약하지 않다”며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나서 정권이 뒤집히기보다는 오히려 푸틴 대통령과 비슷하거나 더 강경한 인사가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이 실각하거나 자연사하더라도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운운하는 등 전쟁을 쉽게 끝내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서방과의 거래를 통해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의 전적인 승리를 예상하는 관측은 거의 없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푸틴 “ICBM 조만간 실전 배치” 총력전 예고… 물 건너간 ‘겨울 종전 협상론’
국방부 이사회 확대회의 주재
메드베데프 중국 방문 지원 요청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방미 중인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조만간 실전 배치하겠다”며 겨울 총력전을 예고하고 나섰다.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중국으로 보내 우방국의 지원 사격을 요청하며 사실상 ‘겨울 종전 협상론’이 요원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방부 이사회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핵전력은 국가 주권보장을 위한 핵심 요소로, 러시아는 핵전력 전투태세를 계속 유지·향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사르마트가 조만간 처음으로 실전 배치된다”고 언급했다.
사르마트는 지난 4월 러시아가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한 차세대 ICBM으로, 사거리가 최대 1만8000㎞에 달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2000배 위력을 지닌 최대 규모 ICBM으로, 서방국들을 긴장케 한 전력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은 극초음속 미사일 지르콘과 최신 무인기 배치도 지시했다. 특히 지르콘은 내달 초순 실전 배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신 무기인 지르콘은 탐지·방어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가용 전력을 총동원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이 패트리엇 방공미사일을 지원하자 전력 ‘강 대 강 대치’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러시아군의 병력을 현재 100만 명 정도에서 150만 명까지 50% 늘리겠다고도 했다.
중국과의 교감도 강화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 ‘최측근’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같은 날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동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일관되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견지하며 적극적으로 평화 회담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중재자 역할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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