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당사자가 시각 중심 문화를 탐구한 책이다. 표지부터 눈길, 아니 손길이 간다. 제목인 ‘거기 눈을 심어라’라고 말하는 점자가 찍혀 있다. 저자는 작가이자 공연예술가, 그리고 교육자이기도 한데, 이 책에서 문학과 철학, 그리고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시각장애를 어떻게 다루고 재현하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그는 장애계 의제가 대중화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주의가 장애인을 소외시키고 타자화, 전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서서히 시력을 잃어간 자신의 경험까지 엮은 책은 비평서이면서 동시에 개성 있는 에세이서이기도 하다.
‘보는 것이 곧 지식이고, 보지 못하는 것은 곧 무지.’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져 서구 문화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관념이다. 저자는 수천 년 동안 ‘눈멂’이 무지, 불합리성, 무의식 등을 가리키는 데 사용돼 왔다면서 다양한 텍스트 속 눈먼 인물을 호출해, 고정관념에 대항한다.
예컨대, 시각장애인 작가로 잘 알려진 헬렌 켈러를 보자. 그는 버라이어티 쇼 보드빌 공연 활동과 사회주의자로서 정치 활동을 한 이력 등이 있으나, 대중에게 있어서 그는 장애로 인한 고난을 이겨낸 ‘위인’으로서 소비된다. 저자는 켈러의 정치적 이념이나 섹슈얼리티는 삭제되는 것을 ‘영감 포르노’라고 비판한다.
또, ‘오디세이아’의 음유시인 데모도코스나 ‘오이디푸스 왕’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모두 눈먼 자들로 등장하는데, 이 은유적 ‘눈멂’이, 시각장애를 신비화하고 비정상적인 결핍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한다.
책은 보행용 지팡이, 망원경 등 시각 장치와 점자, 각종 디지털 기기 같은 기술 영역과 우리가 어떤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지에 관한 과학적 논의까지 나아간다. 저자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는 없다”면서, 눈의 기능이자 두뇌의 기능으로서 ‘보는 것’을 정의한다. “망막의 전기 자극, 그리고 질서와 일관성을 만들기 위한 두뇌의 형태주의적 노력 사이에 일어나는 마법 같은(때로는 재미있는) 대화.” 저자가 스스로 시각 손상을 통해 느낀 것들을 담담하게 풀어놓는 지점에 이르면, 김초엽 작가가 왜 이 책을 “섬세하고 경이롭다”고 평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쓰인 책은 우리가 몰랐던 전혀 다른 감각의 세계를 느끼게 하고, 선입견 너머 완전히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준다. 인간의 취약성, 즉 장애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넘어설 여지는, 우리가 이 책의 우둘투둘한 표지를 만지는 순간 이미 시작된다. 420쪽, 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