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많은 담론을 만들어 낸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 책의 편집을 담당했던 박혜진 민음사 한국문학팀장이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자신이 편집한 책들과 잡지들을 사이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많은 담론을 만들어 낸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 책의 편집을 담당했던 박혜진 민음사 한국문학팀장이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자신이 편집한 책들과 잡지들을 사이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 MZ편집자를 만나다 - (2) ‘82년생 김지영’ 편집한 박혜진씨

영화·연극·담론 만들기까지
책의 시간·생명력 더 길어져

특정작가 섭외·출판여부 결정
비문학 못지 않은 기획력 필요
서사의 힘, 스타신인 만들기도

평론가로서 좋은 책 맘껏 얘기
후배들도 ‘쓰는 사람’이 되길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들 하는데, 책이 하는 일을 한번 보세요. 한 권의 책이 나와서 사회적 논쟁거리와 새 담론을 만들어내고, 영화도 되고 연극도 되고…. 거기까지 모두 ‘책의 시간’이죠. 책의 생명이 오히려 길어진 시대라고 생각해요.” 2016년 출간돼, 한국 여성주의 문학과 성 담론에 뜨거운 불을 지핀 조남주 작가의 대표작 ‘82년생 김지영’(민음사).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하고, 해외 수십 개국에서 출간돼 ‘문학 한류’를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다. 입사 7년 차에 이 책을 만든 박혜진(37) 민음사 편집자. 벌써 6년이 흘러 지금은 한국문학팀 팀장이 됐다. 최근 서울 강남구 민음사 본사에서 만난 박 팀장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긴 시간이었다”고 ‘82년생 김지영’ 출간 후 이 책과 함께 겪고 지나온 시간을 회고했다. 얼마 전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소설은 화제성만큼 호불호도 갈렸다. 작품의 완성도나 동명의 영화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박 팀장은 “책 한 권으로 기대와 상상 이상의 경험을 했고, 그만큼 책 만드는 일에 대한 애정과 꿈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얼핏, 문학 편집은 비문학에 비해 편집자의 기획력이 좌우되지 않는 듯 보인다. 시집이나 소설책은 이미 작가의 명성 등이 책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기도 하니까. 그러나, 편집자의 역량과 역할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게 박 팀장의 주장이다. 그는 “특정 작가와 작업을 할지 말지, 그 소설을 책으로 낼지 말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면서 “그게 이 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그만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때 편집자의 취향은 들어설 자리가 없어요. 사람들이 뭘 궁금해하고 지금 시대가 뭘 필요로 하는지 늘 생각하죠. 독자들은 계속 새로워지고 있고, 편집자는 그걸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요.”

늘 독자와 세상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도, 어떤 소설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지, 어떤 책이 잘 팔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2016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이 2022년 무대에 오르고, 대만과 일본에까지 페미니즘 출판 붐을 일으킬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박 팀장은 “그래서 문학 편집이 더 재밌다”며 웃었다. “권위보다 이야기의 힘이 작동하는 장르거든요. 때로 신인 작가가 돌풍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박 팀장은 편집자이면서 2015년 등단한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최근 비평집 ‘언더스토리’와 독서 에세이 ‘엔딩 노트’ 등 자신의 책도 냈다. 편집자는 오랜 꿈이었으나, 평론가는 우연히 됐다고 말하는 그는, “글 쓸 기회, 즉,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게 달라진 점”이라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만든 책, 좋아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건 편집자로 일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비평은 작품에 대한 나만의 애정 논리를 만들어 내는 일이잖아요. 작품을 계속 봐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작가나 작품이 새롭게 보이고,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 뭔지 더 잘 알 수 있죠.” 일종의 ‘선순환’이다. 그래도, 비평과 편집 중에 고르라면 후자다. 힘은 더 들지만, 보람이 더 크다. “평론은 시작도 끝도, 오로지 저예요. 그런데 편집은 작가의 의중도 파악해야 하고, 동료들과 소통도 해야 하고, 작업 과정에 우여곡절도 생기죠. 하지만 그만큼 출간 후 얻는 기쁨은 몇 배랍니다.”

읽고, 쓰고, 편집한다. 본업의 연장선에서 자신의 비평 활동을 규정하는 박 팀장은, 동료나 후배 편집자들도 ‘쓰는 사람’이길 바란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전문적인 비평과, 대중적인 서평 사이 어딘가에 있을 ‘에디터의 글쓰기’가 한국 문학장에 뿌리내리기를 꿈꾼다. 그가 주축이 돼 2016년 창간한 민음사 문학잡지 ‘릿터’에 최근 들어 유독 편집자들의 글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아직 그 글쓰기를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고 했다. “비평이 가진 마음과 태도에, 친밀한 서평의 방식이 결합한 ‘어떤’ 형태이지 않을까요.”

한 해에 박 팀장이 편집을 담당하는 책은 평균 10권. 그는 “솔직히 자랑할 일은 아니다”라며 겸연쩍어했다. 팀장이 된 지 2년이고, 관리자로서 편집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출간 책 종수를 줄이지 않고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팀원들을 도와주는 일도 즐겁지만, 마음은 늘 ‘현장’에 있는 것 같아요. 책 만드는 일이 여전히, 너무, 좋은걸요, 하하.”

“‘김지영’관련 담론 엮은 100만부 기념판…동시대 한국사회 읽게 할 코멘터리 버전”

■ 박혜진 편집자의 추천도서


박혜진 팀장에게 ‘82년생 김지영’은 이 소설이 한국 문학 시장에 불러일으킨 파란의 크기만큼 의미가 깊다. 그러나 더 각별한 것은 100만 부 기념 특별판이다.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크고 작은 담론과 비평 등 한국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을 함께 실은 일종의 ‘코멘터리’ 버전이다. 박 팀장은 “대중성을 고려해 좀 더 즐겁고 쉬운 형식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이 소설의 최초 목적을 생각했다”고 했다. “100년이 지나서도 이 시대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랐어요.”

영화화가 결정됐거나, 이미 촬영 중인 소설도 있다.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2015)와,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2017)다. 기약 없는 미래와 출근길 지옥철에 지친 20대 청춘이 퇴사 후 한국을 등지고, 레즈비언 딸과 함께 사는 엄마는 조금씩 이해와 성장의 과정을 겪는다. 모두 ‘지금, 여기’를 말하는 이야기. 박 팀장은 에너지 고갈, 이상 고온 등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도 꼭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이 책의 새로운 형식과 문학적 상상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곧 드라마로 선보이는 이혁진 작가의 ‘사랑의 이해’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며 웃었다.

후배 편집자들이 기획한 ‘매일과 영원’ 시리즈의 홍보도 잊지 않았다. 시, 소설의 창작 과정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박 팀장은 “이런 책들은 독자와 문학 사이에 다리가 되어 준다”고 했다. ‘지속 가능한 독서’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인 셈이다. 또한, 이는 편집자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무슨 일이든 성장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잖아요. 이런 시리즈가 편집자와 독자를 모두 키웁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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