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 최현(1895∼1987)

“어머니 아직 안 돌아가셨다.” 큰형님의 말씀에 나는 울음을 멈췄다. 35년 전, 40대 중반이었던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고향에 계신 큰형님으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화가 왔다. 아내와 함께 부여 고향 집으로 급하게 내려가 보니 하얀 천 위에 누워계신 어머니 곁으로 가족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어머니의 얼굴을 만지며 눈물을 흘리자 큰형님께서 아직 안 돌아가셨다고 하셔서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머니는 아직 가늘게 숨을 쉬고 계셨다.

그 이튿날까지 좀 더 지켜보다가 저녁에 서울로 출발해 집에 도착했는데 형님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어머니 상태가 다시 안 좋아졌는데 지금 되돌아오기 어려울 테니 일단은 알고만 있으라고 하셨지만,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놓칠 수 없어 곧바로 다시 내려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흰 천 위에 누워 작은 숨을 쉬고 계셨다. 조금 전 목사님이 오셔서 오늘 밤을 넘기기가 어렵겠다고 했단다. 나는 조용히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다섯 명의 누나 중 넷째 누나가 “엄니, 막내가 왔슈. 눈 좀 떠보셔유”라고 하자 한두 번 눈을 깜박이시는 것 같았다. 그때 이웃에 사시던 한 할머니가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기다리시느라고 아직 가지 못한 거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조금 후에 어머니는 다 탄 촛불의 심지가 사그라지듯 가만히 눈을 감으셨다.

십일 남매 중 막둥이인 나를 어머니는 마흔다섯에 낳으시느라고 사경을 헤매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허약 체질이셔서 임신 중에 식사도 잘 못 하셨다고 하니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돼 더욱 죄송한 마음이다.

겉으로 내색은 잘 하지 않으셨지만 막내아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셨던 어머니께 딱 한 번 등을 맞았는데, 내가 중학생일 때 있었던 일이다. 이십대 동네 청년이 수영을 가르쳐준다며 내 또래 몇 명을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백마강으로 갔다. 우리는 강물에 들어갔지만 센 물살에 놀라 다들 얼른 밖으로 나왔는데 나만 물살에 떠밀려 떠내려가며 몇 차례 물속에 잠겼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때 그 청년이 나를 건져 밖으로 나와 마신 물을 토하게 해서 살아났었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들으신 어머니는 떡 한 시루를 쪄 그 청년에게 가 원망과 고마움을 전하셨다고 한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교문 쪽으로 나가다 보니 낯익은 할머니 두 분이 교문 옆에 앉아 계셨다. 한 분은 내 어머니이고 또 한 분은 같은 동네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 가신 친구분이셨는데, 고향에 가셨다가 막둥이를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와 함께 상경해 학교로 찾아오신 것이었다. 너무 놀라 저를 못 만나면 어쩔 뻔했냐고 했더니 두 분은 학교에 왔는데 왜 너를 못 만나느냐고 오히려 되물으셨다. 초·중·고등학교에 가면 언제나 자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칠십대 초반 늦은 나이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셔서 집에서도 찬송가를 즐겨 부르셨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나직이 부르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꽃도 참 좋아하셔서 집 안에 작은 꽃밭을 꾸미시고 계절마다 피는 꽃을 심어 놓고 가꾸셨다. 대문 밖에는 꽤 오래된 살구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봄이 되면 연한 붉은 색의 살구꽃이 폈고 어머니는 그 꽃을 참 좋아하셨다.

꽃을 사랑하시던 우리 어머니 최현 권사님은 구십이 세 되던 해에 꽃잎이 떨어지듯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이제 내 나이 팔십이 세,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요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깊어만 간다.

김성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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