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식카페 -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22) 뉴올리언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몰락하는 현대 도시의 전형적 풍경… ‘각성’에서는 대폭풍 배경으로 페미니즘 그려내
빈부 격차·인종 갈등에 이어… 늪지대 개발로 인해 도시가 가라앉고 해마다 홍수·허리케인 피해

모퉁이 술집에서 흑인 악사가 연주하는 ‘블루 피아노’가 거리 가득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백인 여자는 충격을 받은 듯 머뭇댄다. 그녀의 이름은 블랑시. 복장이 허름한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앞쪽에 털이 달린 흰 정장,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 흰 장갑과 모자로 우아하게 차려입었다. “길을 잃었나요?” 건물 앞에서 흑인 여성과 함께 수다를 떨던 백인 여성이 블랑시에게 말을 건다.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여기가 거기예요. 여기가 바로 극락이에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첫 장면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는 이 작품에서 미시시피강 하구의 대도시 뉴올리언스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준다. 벨 리브, 즉 아름다운 꿈이란 이름의 대농장 저택을 잃은 블랑시는 전형적 미국 남부 백인이다. 블랑시 드보아란 프랑스식 이름은 이 지역 특유의 프랑스 식민 전통을 드러낸다.
백인과 흑인이 친구처럼 나란히 앉아 농담을 주고받는 풍경은 빈민가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함께 흑인과 백인을 비롯한 여러 인종이 원만하게 어울리는 뉴올리언스의 혼종성을 반영한다. 흑인이 신들린 솜씨로 연주하는 ‘블루 피아노’는 이러한 혼종성을 바탕 삼아 이 도시에서 발원한 위대한 음악, 즉 재즈를 압축해서 상징한다.
블랑시의 복장은 ‘아름다운 꿈’처럼 변해 버린 미국 옛 남부의 화려한 삶과 우아하고 고상한 품위를 드러낸다. 그녀는 ‘욕망’이란 말이 상징하는, 탐욕이 질주하는 현대 물질문명 세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남북전쟁 패배 이후, 급격히 밀려오는 산업화의 거센 물결 앞에서 노예 노동에 의존한 남부의 귀족적, 목가적 삶은 몰락을 이기지 못하고 파멸을 맞이했다. 현실 부적응자로 전락한 대다수 남부인은 현실의 좌절과 절망을 우아하고 고상한 옛 전통에 대한 몽상으로 이겨내려 했다.
현실은 무척 냉혹했다. 블랑시는 부와 안락을 누리던 평화로운 대지를 떠나서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서 ‘극락’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를 맞이한 것은 동생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이다. 경쟁을 즐기고 육욕을 앞세우는 동물적인 남성 스탠리에게 “삶의 중심은 여자와 나누는 쾌락이다. 의존적이며 유약한 탐닉이 아니라 힘과 자존심으로 주고받는 쾌락이다.” 스탠리는 남부의 몽환적 정신성에 대척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무한 폭주를 보여준다.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환대를 호소하는 블랑시의 하소연은 끝내 외면당한다. 과거를 잊고 어떻게든 현실에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그녀와 충돌하는 동생 스텔라, 아내가 출산하러 간 사이에 블랑시를 겁탈하는 스탠리 등 욕망의 전차에 올라탄 인물들은 그녀를 옥죄어 파멸로 몰아간다. 자신의 참담한 처지를 인정할 수 없는 그녀는 마침내 영원한 환상에 사로잡힌 채 정신병원에 갇혀 버린다. 적대적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이상적 과거에 사로잡혀 삶의 낙오자로 전락하는 남부 백인 귀족의 몰락이고, 약자로 전락한 이를 품어주기는커녕 소외시키는 차가운 현대 도시의 전형적 풍경이다.
뉴올리언스는 ‘물의 아버지’ 미시시피강 하류의 삼각주에 위치한다. 이 지역 아메리카 원주민인 촉토인들은 이곳을 불반차, 즉 ‘수많은 혀의 장소’라고 불렀다. 수천 년 동안 불반차는 원주민 교역의 중심지였다. 뉴올리언스도 마찬가지다. 이 도시는 미국 남부 대평원 곳곳에 흩어진 도시들로 이어지는 경제 요충지이자 수운의 관문이었고, 노예무역의 중심지로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이 첫발을 내딛는 항구였으며, 노예 노동을 통해 값싸게 생산된 남부 대농장의 면화와 곡물을 수출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던 무역도시였다.
1690년대에 모피 사냥꾼, 무역업자 등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몰려들어 이곳에 오두막을 짓고 처음 마을을 이뤘다. 1718년 프랑스인들은 미시시피강과 폰차트레인 호수 사이에 식민 도시를 조성하고, 그 이름을 당시 프랑스 섭정 오를레앙 공작의 이름을 따서 누벨 오를레앙, 즉 ‘새로운 오를레앙’이라고 했다. 뉴올리언스 한복판에 ‘오를레앙의 딸’인 잔 다르크 금빛 동상이 우뚝 서게 된 연유였다.
“사랑의 참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벨 오를레앙에 와야 하오. 여기서만 질투나 배신 없이 서로 사랑할 수 있소. 금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지만, 우리가 더욱 값진 보물을 찾은 건 누구도 모를 거요.”
프랑스 작가 아베 프레보는 ‘마농 레스코’(1731)에서 말한다. 두 연인 그리외와 마농은 금보다 값진 보물인 사랑을 찾아서 자유의 꿈을 안고 이 도시에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눈부신 행복이 아니라 사막으로 내몰려 죽어가는 비극적 파멸뿐이었다.
1763년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이 뒤얽혀서 유럽 및 식민지 패권을 노리고 싸웠던 7년 전쟁이 끝난 후, 승자인 영국은 프랑스로부터 뉴올리언스를 빼앗은 후 플로리다와 맞교환해 스페인 제국에 양도했다. 하지만 도시 다수는 여전히 프랑스계 사람들이었다. 1803년 4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으로부터 반환받은 후, 12월 헐값을 받고 다시 미국에 소유권을 넘겨주었다.

몇 차례나 주인이 바뀐 복잡한 역사는 뉴올리언스를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로 만들었다. 백인과 흑인, 무엇보다 이 도시는 카리브해 등에서 이주해 온 백인과 현지인의 혼혈인 크레올의 천국이었다. 캐나다에서 강제 이주한 프랑스인인 케이준도 이 도시에 살았다. 크레올과 케이준은 프랑스어 인구의 비율을 유지하려고 이민을 장려했다. 그 덕분에 뉴올리언스는 미국에서 드물게 프랑스어가 공식어로 쓰이는 혼종의 도시가 되었다. 아프리카 종교가 가톨릭 등의 영향을 받아서 변형된 새로운 토속신앙인 부두교, 흑인 음악과 유럽 찬송가를 합친 재즈, 플래너리 오코너와 트루먼 카포티의 남부 고딕, 앤 라이스로 대표되는 현대 뱀파이어 문화 등은 이 도시가 낳은 복합성의 산물이었다.
1791년 아이티 혁명 당시 건너온 프랑스계 아이티인인 크레올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면서 뉴올리언스는 서서히 도약하기 시작했다. 이후, 노예 노동에 근간을 둔 대농장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뉴올리언스는 남북전쟁 무렵 남부 최대의 도시이자 미국 5대 도시로 크게 번창했다. ‘노예 12년’에서 뉴욕 자유인으로 태어났으나 속아서 노예가 된 솔로몬 노섭은 채찍질로 유지되는 뉴올리언스 노예 노동의 끔찍한 실상을 폭로한다.
번영을 노래하던 뉴올리언스는 남북전쟁 이후 급속히 몰락한다. 몰락이 향수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케이트 쇼팽은 노예제도와 농장 생활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는 뉴올리언스에서 정신적 각성을 맞이한다. ‘데지레의 아기’에서 그녀는 겉으로 완벽한 백인이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흑인이라는 아이러니를 통해 노예제의 성립 불가능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현실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쇼팽의 인식은 아마도 이 지역 특유의 크레올 문화가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다.
“그녀의 내면에서 희미하던 어떤 빛이 분명해졌다. 그 빛은 하나의 길을 보여 주었으나, 이는 금지된 길이었다.” 미국 페미니즘 문학의 서장을 연 명작 ‘각성’은 1893년 ‘10월 대폭풍’이 몰려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은 아내와 어머니란 전통적인 여성 역할에 갇혀 있던 에드나 폰텔리어가 욕망의 폭풍 속에서 정체성과 자유를 깨닫는 과정을 다룬다. 방황 끝에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는 게 고통스럽지만, 평생 망상에 사로잡혀 바보처럼 사는 것보다 낫다”라는 것을 깨달으나, 결국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바닷속에 뛰어들어 멀리까지 헤엄치는 것으로 삶을 끝맺는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이 그녀를 뒤이어 가부장제의 험악한 바다에 뛰어들어 자유의 대지를 향해 헤엄치는 중이다.
2005년 8월 또 다른 열대성 폭풍인 카트리나가 덮쳐서 뉴올리언스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빈부 격차를 드러냈다.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시내 80%가 물에 잠긴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무력했다. 그러나 재난은 늘 자연적으로 시작해 사회적으로 끝난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리베카 솔닛은 말했다. 재난에서 보통 시민들이 “정복할 수 없는 단결력”과 “폭력에 대항하는 애정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유력 언론은 ‘엘리트 패닉’에 빠져 있지도 않은 폭도를 상상하면서 왜곡과 날조를 반복했다. 이들은 방위군과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의 용병을 투입해서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러 나온 시민들을 적대함으로써 사태를 유혈로 악화시켰다.
재건 과정도 문제였다. ‘재난 불평등’에 따르면, 골칫덩이 인간들, 즉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주거지는 재건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집과 재산을 잃고 위기에 처한 시민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낳을 수 있는 건설 투자는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 멀리 있는 부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대부분 부시 행정부와 절친이었다. “불평등이 재난을 만들고, 재난은 불평등을 더욱 심화한다”라는 법칙이 철저히 적용되었다.
오늘날 뉴올리언스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선연하게 드러낸다. 빈부 격차, 인종 갈등에 이어 기후 재앙이 이 도시의 미래를 위협 중이다. 연약한 늪지대를 개발한 탓에 도시 전체가 순간순간 가라앉고 있어서 대부분 지역이 해수면 아래가 되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홍수, 강력해지는 허리케인, 빠르게 높아지는 해수면 상승 등 몰려오는 물들이 해마다 시민들을 패닉으로 몰아넣고, 도시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중이다. 과연 인류는 기후위기를 해결해 뉴올리언스를 구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문학평론가
■ 용어설명
재즈
재즈는 모든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를 이루는 양식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이 음악은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남부의 관문이었던 이 도시에 노예로 끌려와 거주하던 흑인들의 전통 음악, 카리브해에서 퍼져나온 크레올 음악, 프랑스·스페인·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이주민의 기독교 음악 등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루이 암스트롱, 조 킹 올리버 등 재즈 음악가들이 미시시피강을 타고 북상하면서 재즈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크레올
크레올은 본래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스페인 또는 프랑스 백인의 후예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점차 이들과 원주민 또는 흑인의 혼혈까지 포괄했다. 뉴올리언스 크레올은 이름도 흔히 프랑스식으로 지었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으며, 대부분 정규 교육을 받아서 유럽 문화에 무척 익숙했다. 뿌리가 다양한 만큼, 이들의 문화는 복합적 문화가 융합된 혼종적 특성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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