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편소설 심사평
소설이 위기라는 말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들려온다. 하지만 이상하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그렇다면 무엇이 위기인 걸까? 아이러니한 고민 속에 응모된 소설들을 읽어나갔다. 작품마다 이야기와 주제의식이 상이했지만 중심인물이 어려운 세계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나가는 소설이 많았다. 인물은 일할 곳을 알아보고, 열정을 쏟을 의미와 대상을 고민했으며, 머물 방과 집을 찾았다. 소설 속 세계와 사건 인물은 모두 허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뉴스와 다큐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소설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장들의 모음이 아니다. 소설 속엔 작가의 마음과 감정이 깃들고, 타인과 세계에 대한 시각과 입장이 보이며, 선택한 단어와 문장 속엔 고유한 개성과 감각이 육체를 입고 생생하게 표현된다. 사건과 상황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독자가 그것을 왜 봐야 하는지,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단계까지 나아갔더라면 더 좋았을 소설도 많았다.
‘오영의 소설’은 잘 쓴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후기를 작성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글쓰기에 관한 소설로 확장되었고 나아가 진짜와 가짜를 고민하는 주제로 뻗어 나가는 것이 훌륭했다. 다만 소설 속에 예술과 글쓰기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납작하고 전형적인 것이어서 아쉽게 느껴졌다.
‘돌아가는 마음’은 노곤하고 지난한 일상의 문제를 재치있고 유머러스하게 다뤘다. 언니의 캐릭터가 좋았다. 처음엔 엉뚱하게만 보였는데 읽어나갈수록 진한 슬픔과 깊은 감정의 결이 느껴졌다. 소설이 다 끝났을 때 언니의 감정과 사연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와 사연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는 것들’은 열여섯 인물의 감정과 마음, 그리고 말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일부러 새침하게 구는 사춘기의 행위가 누구나 공감될 수 있도록 설득적으로 쓰여 있어서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중심인물 주변 인물은 표면적으로만 그려졌고 이야기의 전개와 마무리 역시 예측 가능한 선에서 안정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쉬웠다.
‘낮에 접는 별’은 문장과 표현, 구성과 전개 모든 부분이 고르게 좋았다. 걸리는 부분도 있었다. 몇몇 장면에서 시간성과 공간성이 모호하게 그려졌고 뒤로 갈수록 감정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 다소 감상적으로 흐른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이야기 속에 적절하게 녹아있는 인물의 행위와 결심, 그 이면에 존재할 작가의 마음이 좋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특히 홍주가 목도리를 받았음에도 휑한 목에 두르지 않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좋은 장면으로 기능했고 그렇게 쓰기로 한 작가의 선택은 앞으로 계속 좋은 소설을 쓰게 될 것이라는 신뢰를 갖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낮에 접는 별’을 당선작으로 기쁘게 합의했다.
심사위원 조경란·정소현·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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