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박강수 마포구청장

무릇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은 성실히 국가가 정한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면 당연히 국가는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리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사회적 신뢰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형 참사는 이러한 신뢰에 바탕을 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벌어진다.

우리는 불과 두 달 전 이태원의 골목길에서 158명의 소중한 생명을 떠나보내야 했다. 전 국민이 참담한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 기관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는 관리책임이 없다’고 선을 그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물론 공식적인 처리기준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법과 규정이 포함하지 않는 위험까지 막을 수 있어야 진짜 안전사회다. 법령의 테두리 밖에서도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 책임의식과 같은 무형의 동력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최근 관내의 한 아파트에서 갑작스러운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영하 10도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친 날이었다. 예기치 못한 한밤중의 정전은 주민들을 추위와 불안에 떨게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포구민체육센터에 3개 동 240세대가 들어갈 수 있는 대피소를 마련하고 난방을 풀가동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잠시 후 한전 직원이 현장을 방문했으나 복구는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행 규정상 노후화된 차단기가 원인이 된 정전사고는 아파트 측에 복구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급해져 한전 고위관계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 항의하니 당초 3시간이 걸릴 거라는 복구가 단 20분 만에 이루어졌다.

긴급한 위기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신속한 복구’가 우선되어야 한다. 아파트 정전 복구가 한전의 책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면, 전기 소비자인 주민들의 위험과 고통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길가에 심정지 환자가 쓰러져 있을 때 심폐소생술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뛰어들어 도울 것이다. 하물며 사회의 공익을 위해 일하는 공기업에서 주민의 안전보다 책임소재를 따지는 모습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 전기관리를 자율성에 맡기는 것은 위급상황 시 대처가 어려운 시스템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안전상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한전에서 먼저 신속한 조치를 취하고 이후에 원인파악과 책임소재 등을 따져야 한다. 전기관리는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전기를 총괄 관리하는 한전은 집단이기주의식 사고에서 벗어나 공공의 안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안전이란 그곳에 있는 당사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살핌을 통해서 지켜지는 것이다. 국민을 먼저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형성될 때 비로소 안전사회로 한층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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