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도입부는 기쁘게 부풀어 오르다
결국엔 체념하듯 이성적 마무리


‘어른이’라는 말이 있다. 어릴 적 즐겨 보던 만화책을 어른이 돼 다시 모은다거나 비싸서 가질 수 없었던 장난감 등을 열정적으로 수집하는 이들을 일컫는, 어른과 어린이가 합쳐져 생긴 말이다. 아마 어릴 적 추억으로 되돌아가 그때의 즐겁고 행복했던 기분을 불러내고픈 욕망의 발로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 중에도 어린 시절 반드시 들어 봤을 법한 클래식 음악이 있다. 그런 곡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이다. 어릴 적 자동차의 후진 경고음으로, 또 2층 양옥집에 살던 짝사랑하던 소녀가 치던 피아노곡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나는 클래식이 정말 싫어! 하는 사람들도 아마 ‘엘리제를 위하여’의 멜로디는 익숙할 것이다. 아마 이 작품에 얽힌 스토리를 알게 된다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들릴 것이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이 살아있을 때 발표됐거나 출판된 작품이 아니다. 베토벤이 숨을 거둔 지 40년 뒤인 1867년, 독일의 음악학자인 루트비히 놀(1831∼1885)은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베토벤의 자필 악보를 발견하게 된다. 악보에는 별도의 제목은 없었고 그저 ‘바가텔(피아노를 위한 작은 소품곡)’ 가단조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악보의 끝자락엔 ‘4월 27일 엘리제와의 추억을 위하여’라는 메모가 덧붙여 있었다. 음악학자들은 엘리제라는 여인이 베토벤과 어떤 관계의 인물이었을지 추적했다. 하지만 4월 27일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단서가 너무 없었다. 연도만 알았어도 베토벤의 편지나 스케치 등을 통해 이 여인이 누구인지 좀 더 정확하게 유추해 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여러 증거를 조합 분석한 결과, 음악학자들은 엘리제는 ‘테레제 말파티’라는 여인이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결국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의 악필 덕분에 테레제를 엘리제로 오독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이 테레제 말파티라는 여성은 빈의 모든 남자가 사랑했던, 당시 빈 사교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웠던 여성이었다. 베토벤은 테레제에게 청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베토벤의 나이 40, 테레제는 17세였다. 즉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작품은 40세의 베토벤이 17세 소녀에게 구애할 목적으로 작곡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23세나 어린 소녀를 사랑했던 베토벤의 마음은 어땠을까? 벅찬 행복과 열정의 감정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론 망설여지게 되고 도덕적인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을까. 아마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으리라. 그런 베토벤의 마음처럼 음악에서도 마치 다가갈까 말까 망설이는 듯하다. ‘띠리리리∼’ 하는 음형은 기쁘게 감성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듯하지만 결국엔 애잔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체념하듯이 이성적으로 마무리 된다.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멜로디라 할지라도 이런 감정들과 상상을 담아 들어보면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답답한 상황, 용기와 망설임 사이 그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이들이라면 ‘엘리제를 위하여’는 공감과 위로의 음악이 돼 줄 것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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