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중인 아내와 다툼을 벌이다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장모씨가 지난해 9월 10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혼 소송 중인 아내와 다툼을 벌이다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장모씨가 지난해 9월 10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살해 피해 최소 83명, 살인미수 177명
가정 내 폭력 위험성 대한 경각심 여전히 낮아
"여전히 사적 영억으로 인식…공권력 거부감도"



지난 2021년 9월 3일 장 모(50세) 씨는 서울 강서구에 있는 다세대주택에서 장검으로 아내 A씨를 찔러 살해했다.

장씨는 별거 중이던 A씨가 아버지와 함께 소지품을 챙기러 집에 들렀을 때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집에 녹음기를 숨겨두고 "이혼 소송을 취하하라"고 요구했고, A씨가 자신의 의도대로 답하지 않자 말다툼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장씨는 장인이 보는 데서 일본도로 아내를 살해하는 잔혹한 모습을 보였다.

또 A씨에게 집착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불화를 겪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 지인은 수년 전부터 장씨가 아이들 앞에서 A씨를 폭행하고 장검으로 위협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장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1심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처럼 오랜 기간을 함께했던 배우자나 연인을 살해하는 범행이 한 해에만 수백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5일 한국여성의전화가 2021년 한 해 동안 언론 보도된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살해된 여성은 최소 83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77명이었다.

이 중 36명(43.3%)은 남편에게 살해됐으며 57명(32.2%)은 남편의 살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분석한 것으로, 실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남편에게 살해된 여성의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21 여성 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성인 여성 7000명 중 평생 동안 여성 폭력 피해를 한번이라도 경험한 비율은 전체의 34.9%(2446명)였으며, 이 가운데 46%(1124명)는 배우자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한테서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배우자 살인’이 끊이지 않는 배경으로 가정 내 폭력을 다른 폭력보다 가벼이 여기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 연구위원은 "낯선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는 엄격하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범죄에는 그렇지 않다"며 "실제로 사법기관은 ‘불특정다수’를 기준으로 재범 위험성을 판단한다. 그런데 특정 자기 주변인들에게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불특정다수가 아니라며 재범 위험성을 낮게 잡는 법적 태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 강화가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경찰의 신변 보호 건수는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4912건이던 신변 보호 건수는 2017년 6889건, 2018년 9442건, 2019년 1만3686건, 2020년 1만4773건, 2021년 2만4810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전국에 있는 258개의 경찰서로 신변 보호 건수를 배분하더라도 경찰서 1곳당 맡아야 하는 신변 보호 대상자는 90여명이 넘는다.

박세영 기자
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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