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크업 스토리
리사 엘드리지 지음│솝희 옮김│글항아리
고대·이집트인 치장술부터
유행 메이크업 변천사까지
다양한 관점으로 화장 탐구
여성자율성 클 때 화장도 부흥
일부 진영선 ‘꾸밈노동’ 비판도
“미용적 장치로만 봐선 안 돼”
책은 그 속에서 어떤 것들을 길어 올렸을까. “나는 화장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유명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책은 그가 메이크업 업계의 최전선에서 일하며 화장품에 대한 애정과 오랜 세월 품어온 고민을 파고든 것이다. 고대인들의 행위와 지금 우리의 행위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책은 역사적 맥락에서 화장과 화장품이 가져온 갖가지 변화를 살피며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한다.
오랫동안 화장은 ‘여성의 일’로 취급됐고, 그것이 산업과 맺어온 관계와 그래서 생겨난 획일적인 미의 기준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그 모든 사실을 인정하면서, 화장의 본질적인 범위가 그보다 더 넓고 깊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남아프리카 동굴에서 발견된 붉은 오커는, 7만~12만 년 전 고대인들이 몸과 얼굴에 바르는 용도로 쓰인 물질이다. 책에 따르면, 이는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증표였다. 고대 브리튼인은 전투 전 나뭇잎에서 얻은 물감을 얼굴에 발랐고, 이집트인은 검은색을 눈과 손톱에 칠했다. 반면, 오늘날의 화장은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다. 또래 집단에서 유행하는 화장법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인들은 소속감보다는 자신의 얼굴을 ‘사회적 아름다움’에 맞추기 위해서 화장을 한다. 그러다 보니, 점차 그 형상이 젊어 보여야 한다거나 하는, 성적인 외형 규범처럼 요구하게 된 것. 물론, 이를 거부하기 위해 일부 페미니즘 진영에선 화장을 ‘꾸밈 노동’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책은 이렇게 다종다양한 맥락을 살피면서 화장을 향한 여성들의 태도나 여성을 보는 사회적 태도, 즉 화장과 여성의 자유, 권리의 관계를 파고든다. 여기서 가장 흥미롭고 핵심적인 건 바로 화장이 가장 활성화한 시기가 화장이 용납되지 않던 시기보다 훨씬 더 여성에게 자율권과 선택권이 많은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가 말하는 ‘화장’, 즉 메이크업은 사람이 무언가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와 닿아있고, 즐거움이나 창의적 표현의 의미를 제공하는 주요한 식별과정이 된다. 화장을 해야 한다거나 화장은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화장을 할지 말지, 어떤 색을 바를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여성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저자는 화장 문화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를 다양한 도판과 마치 골동품 가게에서 만날 듯한 빈티지한 화장품 케이스 등을 통해 실감 나게 보고 읽을 수 있다. 빨강, 하양, 검정 등 인류가 무언가를 칠하기 시작했을 때 등장한 세 컬러를 중심으로 고대의 팔레트를 상상하게 하고, 각 장마다 ‘화장의 뮤즈’로서 낯익은 이름들을 만나게 해주는 것도 이 책의 묘미. 네페르티티와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역사적 아이콘부터, 그레타 가르보와 같은 무성 영화 속 주인공, 여기에 마돈나,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 현대의 스타들을 통해 이들이 만들어낸 각기 다른 스타일도 보여준다.
꾸미는 행위로서 화장은 여전히 꾸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다만, 저자는 화장이라는 분야를 일차원적으로만 판단하고 폐기하지 말자고,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 획일화된 아름다움의 장치가 아닌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쓰인다면 “권력 분산의 수단”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가 너무 멀고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저 익숙한 화장품 브랜드의 역사나 유명인들의 화장 스타일을 다시 새롭게 보는 것에서부터 책을 읽어도 괜찮다.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처럼 하고 있던 화장의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미적 기준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지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있을 테니. 268쪽, 3만2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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