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사극을 떠올려보자. 외출한 양반들은 늘 갓을 쓰고, 집에서도 대감들은 삐죽삐죽 산봉우리 모양에 시스루처럼 비치는 정자관을 쓰고 있다. 저잣거리의 상민들은 패랭이를 쓰고 다닌다. 기다란 쓰개치마로 머리를 가리고 다니는 여인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열 사람이 모이면 아홉이 다른 모자를 쓰고 있는 나라. 조선은 모자 천국, 모자 왕국이었다.
‘모자의 나라 조선’은 조선 시대 수많은 모자들이 왜 태어났고,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 말한다. 조선 시대엔 반상을 가리지 않고 긴 머리를 틀어 올린 상투가 노출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다양한 관모가 개발된 건 당연한 수순이다.
계급 사회였던 조선에서 모자는 신분, 직업, 나이, 성별을 상징하는 사회적 코드 역할을 수행했다. 갓은 양반과 중인 계층에만 허용하는 등 신분에 따른 복식사용 규정까지 제정해 시행했다. 갓을 쓰지 못했던 상민들은 자신의 신분과 상황에 어울리는 다양하고 독특한 모자를 만들어냈다.
모두가 갖가지 모자를 쓰고 있는 풍경은 개화기 서양인들에게 인상 깊었던 모양.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루이 바라는 “조선은 모자의 천국”이라고 했고, 로웰 천문대로 유명한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조선의 모자 이야기로만 한 권의 책 분량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니 얼마나 많고, 다양한 모자들이 있었길래? 조선 시대 수많은 모자를 계층별로 분류해 사진과 함께 설명을 덧붙인 대목은 책의 백미다. 전체 368쪽 중 모자를 소개한 부분만 150쪽이 넘는다. 갓의 기본형 흑립부터 실내에서 썼던 정자관, 상민이나 하층민이 썼던 초립과 패랭이, ‘우산모자’ 갈모까지 망라된다.
그러나 모자 왕국은 시대의 변화로 급격히 스러졌다. 단발령으로 갓은 점차 자취를 감췄고, 일제의 ‘학도모자’가 점령했다.
저자의 모자와 민족에 대한 넘치는 애정으로 책은 다소 산만하다. ‘한국인은 서열 의식이 체질화돼 있는 서열 민족이다’ 등 갸우뚱한 논리 전개도 눈에 띈다. 그렇지만 모자 왕국 조선의 위상을 재조명해야겠다는 저자의 애틋한 진심은 분명히 전달된다. 368쪽, 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