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高금리에 우는 ‘영끌’ 직장인
주담대 변동금리 5.15~8.11%
이자·원금에 수백만원씩 깨져
“난 힘든데… 동료는 신차 고민”
상대적 박탈감·무기력증 호소
“연말 상여금요? 대출 이자 갚느라 다 사라졌어요.”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32) 씨는 지난해 말 회사에서 850만 원의 상여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 상여금은 김 씨의 계좌에 입금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아파트 대출 이자를 갚는 데 전액 사용됐다. 그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이자를 연말에 몰아서 일괄적으로 내고 있다”며 “상여금에 더해 모아뒀던 돈을 탈탈 털어서 원리금으로 약 1400만 원을 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수백만 원 단위의 상여금이 들어왔지만, 단 1원조차 마음껏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는 “올해로 직장 생활 5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대출이자를 내고 나니 현재 통장 잔액이 200만 원을 채 넘지 않는다”며 “상여금을 받은 뒤 자동차 옵션을 알아보고, 여자친구에게 줄 명품 선물을 고민하던 직장 동료가 정말 부러웠다”고 털어놨다. 넉넉한 연말 상여금으로 일부 사고 싶은 물품을 사고, 대출도 갚는 ‘금융 치료’는 꿈도 못 꿀 처지가 됐다.
주택 마련을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 직장인들이 고금리 시대 대출원금과 대출이자를 갚는 데 상여금을 올인하는 등 ‘영털’(영혼까지 털리는 대출)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과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연 5.15∼8.11%를 기록했다. 올해도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경제적 어려움에 취약한 영털 직장인들이 더 큰 심리적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기업에 다니는 윤모(35) 씨도 지난해 연말 상여금으로 받은 2000만 원 전액을 아파트 대출 원금을 갚는 데 투입했다. 윤 씨는 자신의 주담대 금리가 4%대에서 7%대로 오르면서 대출 이자로만 월급의 60∼70%를 지출하고 있는 탓에 하루라도 빨리 원금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내에게 ‘연말 상여금으로 얼마를 받았는지’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었다”며 “상여금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갚아야 할 대출금이 여전히 3억 원을 넘으니 무기력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영끌족은 기본적으로 생존 욕구가 상당한 사람들이지만, 반대급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며 “경제적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무기력증이 심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영 기자 bigzer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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