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임승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상임위원

요즘 원자력계의 최대 화두는 소형모듈원자로(SMR)다. SMR란 발전용량이 300MWe급 이하 원전으로, 공장에서 만들어 설치 장소로 운송 후 조립하는 방식의 원자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SMR가 새로운 에너지 공급 수단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에 따르면, 2035년 세계 SMR 시장은 최대 2만1000MWe로 예상된다.

이미 세계적으로 80종 이상의 SMR가 개발되고 있을 만큼 경쟁은 치열하다. 가장 속도가 빠른 곳은 미국의 뉴스케일 파워다. 뉴스케일 파워는 2027년 SMR 상업운전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우리 정부도 올해부터 4000억 원을 투입해 한국의 독자적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를 개발할 계획이다. 2028년 표준설계인가를 거쳐 2030년대에는 수출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i-SMR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신속하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국내 원자력 안전규제 기술은 개발 기술과 마찬가지로 내공이 축적돼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2년 세계 최초로 소형 일체형 원자로인 ‘스마트(SMART)’의 표준설계인가를 내줬다. 이 경험은 i-SMR 표준설계인가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원안위는 i-SMR의 안전성을 충분히 확인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규제 접근 방식도 혁신적으로 바꿀 계획이다.

지금까지 개발자가 서류를 제출하면 이미 확립된 안전기준에 맞춰 검토하는 ‘사후’ 검토 방식이었다면, i-SMR는 원안위가 개발자에게 안전기준을 먼저 제시해 안내자 역할을 하는 ‘사전’ 검토 방식을 적용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원안위는 SMR 인허가 시 예상되는 규제 현안 등을 개발단계부터 검토할 수 있도록 사전설계검토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사전설계검토를 적용하면 개발자가 기술 개발을 완료한 뒤 원안위의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규제 방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혁신적이어야 한다. 기존 세부 안전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SMR는 혁신적이기 어렵다. 개발자가 새로운 기술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다면 원안위는 얼마든지 수용 가능하다.

원자로 시설의 목적, 원리, 설계특성 등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거나 적용하지 않더라도 안전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는 새로운 안전기준을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판단을 원안위가 자체적으로 엄밀하고 철저하게 할 수 있도록 지난해부터는 SMR 안전규제 기반기술 연구·개발(R&D)도 시작했다.

i-SMR가 안전성과 경쟁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원안위는 초기 개발단계부터 개발자와 지속적으로 긴밀하게 소통하며 안전성 확인 체계와 신기술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갈 방침이다. 이미 원안위, 산학연 전문가, 개발자 등으로 구성된 ‘i-SMR 규제준비단’을 꾸렸다. 17일에는 관계부처·기관, i-SMR사업단, 전문가 등이 한자리에 모여 ‘SMR 안전규제 방향 마련을 위한 전문가 세미나’도 개최한다. 더욱 혁신적이고 더욱 안전한 i-SMR의 성공적인 개발을 위해 원안위가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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