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건호는 자신을 역사 컬렉터로 칭하고 자신의 일을 탐정에 비유한다. 책 제목대로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됐다.
책은 대학교 1학년 답사 때 우연히 빗살무늬 토기 파편을 발견한 뒤 30여 년간 역사 자료를 모아온 저자가 자신의 수집품 10개를 중심으로 이에 얽힌 사람과 역사를 흥미롭게 좇아간다. 그는 ‘역사 컬렉터’를 ‘골동품 컬렉터’와 분명하게 구분한다. 골동품의 가치가 흔히 얼마나 오래됐는지, 얼마나 예술적인지로 결정되지만 역사 컬렉터에겐 물건에 담긴 삶과 역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0년간 낙지 볶음 장사를 한 식당 주인에겐 명품 도자기보다 40년간 써온 찌그러진 냄비가 더 소중하듯 자료에 얽힌 사람, 그들의 땀과 역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수집한 자료를 보고 있으면 자기 이야기를 듣고 남겨 달라는 사람들의 애타는 부탁이 들린다고 했다. 이를 따뜻하게 복원하고 위로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다. 이 책도 그런 소명의 증거물이다.
책에 묶인 10개 에피소드 중 첫째 이야기는 그가 2022년 온라인 경매에서 구입한 조선 후기 류씨 집안 4대에 걸친 호구단자가 주인공이다. 호구단자는 각 호(집)의 주호(오늘날 호주와 비슷한 개념)가 자기 호의 인적 사항을 적어 관에 제출한 문서인데, 저자는 1729년부터 1898년까지 4대 호구단자에 갑덕이라는 노비가 적힌 것에 주목한다. 호구단자대로라면 갑덕은 무려 111세까지 류씨 집안의 노비로 일한 게 된다. 물론 갑덕이 장수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여기서 역사 컬렉터 탐정의 작업이 벌어진다. 여러 자료와 정황, 단서들을 추적한 결과 그가 내린 ‘추론’은 이렇다. 노비가 도망가자 노비와 노비 후손에 대한 권리를 분명히 하기 위해 대대손손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 양반행세를 하기 위해 실재하지 않는 가짜 노비 갑덕을 만들었을 가능성 등이다. 이어 역사 탐정의 작업은 조선 후기 신분제 폐지, 농촌 공동체 해체와 새로운 사회질서 형성으로 뻗어간다. 하나의 자료, 자료 속 사람들을 당대 사회와 한국 근현대사라는 큰 맥락 안에 던져놓음으로써 그들의 삶과 역사를 들려준다. 책은 이렇게 수집품을 모티프 삼아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 3·1 운동, 일제강점기, 6·25전쟁과 1960년대 경제 개발 등 한국의 역사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볍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고,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거시사를 품은 미시사이다. 264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