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와 초, 제목을 이리 한글로만 써 놓았으면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나마 한자를 붙여 놓으니 한자를 아는 이들은 요리에 쓰는 시큼한 액체인 초와 어둠을 밝히는 둥근 막대형의 초를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불을 밝히는 물건을 가리키는 한자 ‘燭’은 ‘촉’으로 읽어야 하니 뭔가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둘 다 한자어이지만 한 음절짜리 한자어가 겪는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이다.

곡물을 발효시켜 신맛을 내는 초는 음식의 맛을 돋우는 액체 조미료이다. 이것을 가리키는 고유어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15세기의 한글 문헌에서부터 한자어 ‘초’로 나타난다. ‘산(山), 강(江)’ 등 한 음절 한자어도 꽤 되니 문제 될 것이 없는 용법이다. 밀랍, 동물성 지방 등을 정제해 심지를 넣어 굳힌 초 또한 한자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르는데 15세기의 문헌에는 ‘쵸’로 나타난다. ‘화촉(華燭)’에서는 본래의 음인 ‘촉’으로 발음하지만 나중에 중국어 발음을 접촉하며 ‘쵸’로 다시 받아들였다.

15세기에는 ‘초’와 ‘쵸’가 발음상 명확하게 구별되었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ㅈ, ㅊ, ㅉ’의 발음이 바뀌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날 ‘쥬스’와 ‘주스’를 구별해서 발음하려 해도 결국 같은 발음으로 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 결과 불을 밝히는 ‘쵸’가 발음과 표기 모두 ‘초’가 된 것이다.

서로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데 소리와 표기가 같아지니 혼동이 될 법도 하다. 그런데 현명한 조상들이 한 음절짜리 한자어를 두 음절로 바꾸어 해결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식초(食醋)’와 ‘양초’이다. 초는 본래 먹는 것이니 굳이 ‘먹는 초’라 밝힐 필요는 없다. 양초는 동물 지방이나 석유에서 추출한 파라핀으로 만든 것이니 전통 초와는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둘을 혼동할 일이 없으니 현명한 해결책이었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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