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그’는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모습이다.
작품 ‘그’는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모습이다.


■ ‘현대미술계 악동’ 카텔란… 리움미술관서 첫 국내 전시

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
쌍둥이로 빚은 작가의 형상
천으로 덮은 9개의 시신 등
기이하고 천진한 설치 작품

삶의 비극과 희극 모두 녹여
관객에 토론거리 던져주기도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기괴하진 않지만 기이하다. 하나하나마다 시각 이미지가 강렬해서 발길을 오래 붙든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조롱, 유머, 풍자를 넘나들며 기존 권위와 가치체계를 흔든다. 이탈리아 출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2)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다.

카텔란의 첫 한국 전시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했다. 오는 7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조각, 설치, 벽화, 사진 등의 작품 38점을 선보인다. 2011년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에서의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이다. 그가 세계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대표작들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전시를 둘러보면, 카텔란이 왜 ‘미술계 악동’으로 불리는지 헤아릴 수 있다. 동시에 재개관을 하며 “현대미술의 메카가 되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던 리움이 카텔란 전으로 올해 전시 테이프를 끊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천진하고도 기발한 발상으로 현대미술이 과연 무엇인지 토론 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2019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1억4000만 원에 팔려 화제가 된 작품 ‘코미디언’.
2019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1억4000만 원에 팔려 화제가 된 작품 ‘코미디언’.


카텔란은 지난 2019년 바나나 1개를 테이프로 벽에 붙인 작품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미국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12만 달러(약 1억4000만 원)에 팔렸다. 시간이 지나면 변색하는 바나나를 저렇게 비싸게 살 필요가 있을까. 이런 의문을 예상하듯 카텔란은 작품에 ‘코미디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작가 이름의 아우라가 돈이 되는 미술 시장의 민낯을 블랙 유머로 드러낸 것이다.

교황이 운석을 맞고 쓰러진 모습을 형상화한 ‘아홉번째 시간’.
교황이 운석을 맞고 쓰러진 모습을 형상화한 ‘아홉번째 시간’.


카텔란의 비범한 익살은 1999년작 ‘아홉번째 시간’에서 이미 알려졌다. 당시 교황 바오로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을 조각한 이 작품은 가톨릭계 안팎에 논란을 일으켰다. 2001년 작 ‘그’도 논쟁적인 작품이다. 멀리 뒤에서 보면 교복을 단정히 입은 학생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듯한 모습인데, 앞에서 가깝게 보면 유대인을 학살했던 히틀러의 얼굴이다. 중립국이면서도 히틀러에 협력했던 스웨덴에서 전시할 때 첫선을 보였다는 이 작품이 한국에서는 어떤 의미를 자아낼까.

2007년 작 ‘모두’는 천으로 덮은 아홉 개의 시신 모습을 띠고 있다. 대리석 조각 작품인데 천의 주름이 섬세하기 그지없다. 거기에 감탄하기 이전에 비극의 분위기가 압도한다. 최근에도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겪은 한국인들로서는 눈을 감고 싶은 풍경일 수밖에 없다. 제목으로 봤을 때는 세상 모든 이의 삶이 필연적으로 죽음을 대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떠올리게도 한다.

2010년 작 ‘우리(WE)’. 이 작품 제목이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 타이틀이기도 하다. 두 남성이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인데, 자세히 보면 작가 자신의 모습을 쌍둥이로 만들어놨다.
2010년 작 ‘우리(WE)’. 이 작품 제목이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 타이틀이기도 하다. 두 남성이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인데, 자세히 보면 작가 자신의 모습을 쌍둥이로 만들어놨다.


카텔란의 풍자는 자신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에서 더욱 빛이 난다. 전시 타이틀인 ‘우리(WE)’를 제목으로 하고 있는 2010년 작품은 두 남성이 나란히 누워 있는데, 자세히 보면 작가 자신의 모습을 쌍둥이로 만들어놨다. 카텔란은 미술관 바닥을 뚫고 얼굴을 내밀거나 벽에 걸려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키가 150㎝ 정도의 인물상으로 어른도, 아이도 아닌 내면을 암시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자신의 발바닥을 확대해 극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아버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리움미술관 제공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자신의 발바닥을 확대해 극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아버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리움미술관 제공


카텔란은 세상의 제도에 적응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본 작품들도 보여준다. 세발 자전거를 타고 전시장을 돌아다니거나, 책상에 벌을 서듯 앉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북을 치는 소년 등이 그렇다. 그는 ‘어머니(1999)’ ‘아버지(2021)’라는 제목의 작품도 내놨다. 기도하는 모양의 두 손을 찍은 사진이 ‘어머니’이고, 자신의 발바닥을 확대해 극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 ‘아버지’이다.

카텔란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대에 가지 못하고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가구 디자인업계에서 일하던 중 미술을 시작했다. ‘좀 더 나은 대접을 받겠구나’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인생의 쓴맛을 본 후 미술 쪽에서 성공한 사람의 희로애락이 그의 작품에 다 녹아 있다. 익살스러운 연극에 초대해놓고 찰리 채플린의 금언을 되새기게 하는 게 그의 작품들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그 역시 희극 쪽에 더 많이 서 있고 싶겠으나, 지독한 장난기로 그걸 감춘다. 1999년 런던 전시 때 내놓은 설치 작품은 혀를 차게 한다. 영국 축구팀이 진 경기를 숫자로 일일이 기록한 것을 떡 내놨다. 축구 종주국 자부심이 큰 영국 관객들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미술관 로비에 있는 작품 ‘동훈과 준호’는 노숙자 모습을 하고 있다.
미술관 로비에 있는 작품 ‘동훈과 준호’는 노숙자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 악동 기질은 이번 리움 전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초일류 기업인 삼성이 운영하는 문화재단의 미술관 전시장 입구와 로비에 노숙자 형상의 작품을 설치했다. 제목은 ‘동훈과 준호’. 세계 경제대국 반열에 들어간 대한민국의 관객은 그걸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한 전시 ‘WE’ 전경.  리움 제공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한 전시 ‘WE’ 전경. 리움 제공


박제된 동물들을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관객마다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을 듯 싶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카텔란의 작품들은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며 연대, 공감, 사랑 등을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정답은 없다”며 “관객이 본대로 자유롭게 느끼는 것이 가장 바른 감상법일 것”이라고 했다. 관람은 무료인데, 2주 전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다.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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