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진용기자의 그여자 그남자 - ‘일타 스캔들’ 남행선·최치열
국가대표서 반찬가게 사장으로
엄마없는 조카를 딸처럼 키우며
사교육 1번지 강남서 살아남기
“인생은 더듬더듬 찾아가는 것”
1시간에 1억 버는 수학강사
‘한 끼 밥’에 다시 이어진 인연
도시락 대가로 일타 비밀과외
“가격이랑 가치는 다른 거잖아”

그럼에도 그 여자의 인생은 ‘답도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때 유망한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였으나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를 포기한다. 지금은 반찬가게 사장으로 살아가지만, 적어도 좌절은 없다. 그는 말한다. “인생은 더듬더듬 답을 찾아 나가는 거죠.”
그 남자의 생각은 다르다. 똑! 떨어지는 답을 찾는다. 그가 수학을 전공한 이유다. ‘1’이 답인 문제에 이견은 없다. 그를 ‘일타’ 수학 강사로 만든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수학과 인생은 다르다. 그래서 읊조린다. “수학은 답이 딱 있거든요. 그런데 인생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4%로 시작한 시청률이 11.8%(8회)까지 치솟은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수학에 비유하자면, 삶의 경험을 쌓고 더해 ‘적분’으로 답을 찾는 그 여자 남행선(전도연 분)과 더 이상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을 잘게 쪼개 쓰는 ‘미분’ 같은 그 남자 최치열(정경호 분)의 수평선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각도가 단 1도만 틀어져도 두 선분은 결국 만난다.
◇삶에 인연과 이야기를 더하다…‘적분’처럼 사는 그 여자
그 여자의 삶은 치열하다. 핸드볼에서 두각을 보였다. 태극마크도 달았다.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걸면 인생이 크게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자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남동생을 건사하기도 힘든데, 언니는 어린 딸을 두고 도망쳤다. 눈치 있는 조카는 어느 날 “엄마라고 부르면 안 돼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결혼 안 한 그 여자는 엄마가 됐다.
그 여자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는 사치였다. 핸드볼을 뒤로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손힘’ 쓸 일은 없어졌지만, 엄마가 물려주신 ‘손맛’은 남았다. 그래서 시작한 장사가 ‘국가대표’ 반찬가게다. 그 위치는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강남’이다. 그 여자의 이름이 왜 남(南)행선인지 이제 이해가 간다.
그 여자는 콧대가 하늘 위인 줄 아는 엄마들을 상대로 장사한다. 그래서 항상 허리와 눈높이를 낮춘다. 하지만 그의 심연에는, 사교육 한번 없이 공부 잘해주는 딸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러던 딸이 마치 빚진 사람처럼 부탁한다. “엄마 나 일타 강사, 강의 하나만 들으면 안 될까?” 돈 낸다고 들을 수 있다면 일타 강의가 아니다. 그 여자는 딸의 좋은 자리를 맡아주기 위해 뜀박질을 해 대기표를 받는다. 그도 몰랐을 것이다. 핸드볼 국가대표 때 운동한 효과를 이렇게 발휘할 줄은.
하지만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인 순간, 그 여자의 삶은 또다시 달라졌다. 반찬가게 사장님의 딸이 경쟁자로 올라서자, 주변 엄마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딸이 어렵게 들어간 우등생 반에서 부당하게 쫓겨나자 “그 학원에 보내면 성적은 오를지 모르지만 배울 것은 하나도 없네요”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안다. 수험생을 둔 집에서 성적 오르는 것보다 값진 일이 없다는 것을.
그런 그 여자의 삶에 그 남자가 개입한다. 전직 국가대표 선수의 눈엔 차지 않을 비리비리한 남자다. 하지만 그는 딸이 그토록 원하던 일타 강사다.


◇삶을 초 단위로 쪼개고 재단하다…‘미분’으로 사는 그 남자
교사는 학생을 평가하고, 강사는 학생의 평가를 받는다. 성적을 올려주지 못하는 강사에게 학생이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치열강’을 진행하는 수학 강사인 그 남자는 단연 업계 으뜸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난 니들이 나만큼 치열했으면 좋겠어, 난 니들이 잘됐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그래서 밥도 못 먹고 잠도 안 자고 연구해. 아주 치열하게.” 그래서 그 남자의 이름 또한 최치열이다.
하지만 이 남자, 거짓말쟁이다. 연구하려고 밥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 통 소화를 못한다. ‘1조 원의 남자’로 통하지만 끼니 한번 제대로 못 챙긴다. 요즘 세상에 영양실조라니. 그러다 그 여자의 반찬가게에서 만든 도시락을 먹고 눈이 번쩍 뜨였다.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을 먹으니 속이 편하고, 잠도 잘 잔다. 당연히 강의 때도 힘이 솟는다.
그 여자, 어려웠던 시절 그 남자에게 더운밥을 지어주던 식당 주인의 딸이다. 대를 이어가며 그 남자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묘한 인연이다. “잘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는데”라는 그 여자의 말처럼 그 남자의 때깔도 달라진다.
밥정(情)만큼 귀한 것이 없고, 함께 밥 먹는 이를 식구(食口)라 했다. 한 끼 밥을 통해 그 남자의 삶에도 변화가 생긴다. “인간이 하는 것 중에 가장 소모적인 게 인간관계”라며 남행선을 수시로 “호남선 씨”라고 부르던 그에게 그 여자와 그 딸이 눈에 밟힌다. 그래서 도시락을 대가로 그 여자의 딸에게 비밀과외를 해주기로 결심한다.
딸은 묻는다. “쌤이 저 30분만 봐주셔도 5000만 원인 셈인데, 왜 봐주시는 거예요? 저희 엄마 도시락은 만 원도 채 안 되는데….” 그 남자는 답한다. “가격과 가치는 다른 거잖아. 난 그 도시락에 그만큼의 가치를 부여한 거고.”
그렇다. 가격은 셈할 수 있지만, 가치는 셈할 수 없다. “인생은 공식도 법칙도 없고, 틀릴 때마다 ‘아, 또 나 뭐 잘못됐구나’ 위축되고…”라며 인생에 가격표를 붙이려는 그 남자에게, 그 여자는 “틀릴 때마다 답에 가까워지는 거잖아요. 핸드볼 할 때도 안 될 때 다른 방법을 써가며 성공률을 높여 가요. 인생도 그런 거죠”라고 가치로 답한다. 이 대화가 오가는 6화의 소제목은 ‘인생엔 정답이 아닌 여러 개의 모범답안이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이 함께 찾을 모범답안은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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