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I 도움으로 번역상
문학 영역 진입·위협 ‘동시에’
학계 “기계가 인간을 써선안돼”
번역상 응모·심사변화 불가피
AI 번역기를 활용해 공신력 있는 번역대회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 마쓰스에 유키코 씨의 사례는 방식 자체가 번역과 AI 트렌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현재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포스트 에디팅’의 전형이고, 문학 번역에서 흔한 공동번역의 파트너가 ‘사람’에서 ‘기계’로 대체됨을 알려줬다. 또한, 기계 번역이 곧 소설, 시 등 인간의 영역인 ‘문학’에 진입할 가능성과 위협을 품은 신호다.
◇인간과 기계, 공동번역 파트너가 되다 = 이미 번역은 ‘포스트 에디팅’의 시대를 맞이했다. 마쓰스에 씨의 최종 번역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높았던 것은 파파고의 초벌 번역을 다듬은 포스트 에디팅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기계 번역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그 오류를 바로잡고 ‘말맛’을 살려 의역하는 포스트 에디팅 분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오영아 이화여대 통번역대 한일과 교수는 “통번역 관련 학회가 열리면, 이제는 거의 대부분 기계 번역과 포스트 에디팅이 주요 테마다”고 전했다. 이는 점점 더 기계와 사람의 ‘공동’ 번역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일본에서 한국문학번역대회도 열고 있는 김승복 책거리 대표는 “한·일 양국 번역가 두 사람이 짝을 이루는 ‘페어(공동) 번역’은 흔하다. 이번 웹툰 수상작은 그 파트너를 사람이 아닌 기계로 한 것이다”라고 했다.
◇더 중요해지는 개성과 창의력 = 기계 번역을 피할 수 없다면 AI와의 올바른 협업이 관건이다. 기계에 의존했어도, 자기만의 문장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 즉 모국어를 더 잘 구사하는 번역가가 유리해진다. 오 교수는 “우리가 기계를 써야지, 기계가 우리를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번역가의 일’(연암서가)을 출간한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도 “더욱 개성과 창의력, 문해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이세돌이 진 것처럼, 문학에도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계 70% , 인간 30%… 미래 예측한 소설 = 근미래를 다룬 듀나 작가의 과학소설(SF) ‘추억충’(2016)에서 주인공은 기계가 70% 이상 해 둔 번역 작업을 이어받아 나머지 30%를 담당한다. 그는 그것이 20년 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면서 20년 뒤 번역일이 존재할까를 염려한다. 이 소설을 비롯해 ‘82년생 김지영’ 등을 일본어로 옮겼고 ‘한국문학번역대상’을 받은 바 있는 일본의 저명한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는 “듀나의 소설에서 보듯이 30%는 꼭 번역가의 두뇌가 필요하다면 70%의 기계 번역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번역원 측은 “이례적인 경우”라며 말을 아꼈다. 전문 번역 인력 양성이라는 취지에는 다소 부합하지 않는 수상 사례라서다. 곽효환 번역원장은 “전문 번역에서 기계 번역 역할이 커졌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번역원은 접수된 최종본으로 심사를 한다. 응모자의 한국어 수준이나 기계 번역 의존도까지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AI의 발달 속도를 고려하면, 번역상 응모와 심사 시스템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단순히 번역 업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AI와 공생할 인간 사회를 위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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