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문학번역상 일본 마쓰스에
“파파고 이용, 위반아닐까 염려도
만화 좋아해 도전…세상 배웠다”
“제 수상이 현대 인공지능(AI) 문제와 연결되어 흥미로운 사례가 된 것이 놀랍습니다.”
한국어를 거의 못하지만 AI 번역기의 도움으로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한 2022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아 이변을 일으킨 일본인 마쓰스에 유키코(松末有樹子·44) 씨는 8일 문화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마쓰스에 씨는 자신의 수상이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AI 창작물에 대한 논의가 일어난 것에 대해 “세상을 하나 더 배웠다”면서도 “나의 행위가 발단이 돼 번역원에서 큰 문제가 됐다는 걸 들었다. 나의 모든 게 부정되는 결말을 상상하면 무섭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일본 오카야마(岡山)현에서 남편,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마쓰스에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잠시 판매원으로 일했지만 결혼 후 20년째 전업주부로 지낸다고 했다. 한글을 겨우 익힌 그가 번역에 도전하게 된 데에는 재일교포 친구가 “만화를 좋아하니 한국 웹툰을 읽어보고, 이왕이면 번역까지 해보라”라고 권한 게 결정적이다. 그는 네이버 AI 기반 번역기 ‘파파고’로 초벌 번역을 했지만 ‘포스트 에디팅’(post editing·기계 번역 후 사람이 직접 하는 수정과 편집)에 만화를 많이 본 자신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등장 인물과 설정이 매력적이어서 즐겁게 번역했다”는 그는 작품을 웹이 아닌 종이로 읽어도 원활하게끔 의식하며 작업했다고 했다.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했지만 최선을 다했다”면서 “노력하면 인정받는다는 걸 실감했다. 보물이 되는 체험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실제로 그의 번역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완성도, 정확성, 창의적 현지화 작업이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앞서 지난해 12월 번역상 시상식을 위해 방한했을 당시 그는 한국어나 번역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며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회화를 전혀 할 수가 없다”며 겸연쩍어했다. 또 별다른 경력과 에피소드가 없는 자신이 인터뷰 대상이 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파파고에서 작품 시즌 1의 모든 것을 번역했다”는 내용이 담긴 손편지를 건네면서 “이것(파파고 번역)이 룰(규칙) 위반은 아닌가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손편지는 파파고를 이용해 한글 작문을 한 뒤 옮겨 적은 것이라고 했다.
마쓰시에 씨는 세계적으로 K-콘텐츠가 인기인 것은 알지만 특별히 즐기는 것은 없다고 했다. 만화를 좋아하지만 대부분 일본 작품이고 한국 웹툰도 이번에 번역해 상을 받은 구아진 작가의 ‘미래의 골동품 가게’를 통해 처음 접했다. 과거 한국과의 인연은 12년 전의 딱 한 번의 여행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 ‘도라에몽’의 한국어판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각국의 만화책 서점을 구경하고 좋아하는 만화책을 모으는 게 그의 오랜 취미. 그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문화권의 만화를 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전문 번역가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은 없다고 했다.
논란이 된 마쓰스에 씨의 번역상 수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AI로 인한 시대 변화상을 보여주는 결정적이고 상징적인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수상자의 한국어 실력에 대한 공방보다는 인간 사회를 위해 AI가 주는 효용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김유빈 명지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AI가 파트너가 되는 시대에 긍정적 편익의 한 예”라면서 “두려움에서 오는 막연한 구호보다 엄밀한하고 섬세한 분석, 시대 흐름을 읽은 제도 마련이 필요한 때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문학번역원은 8일 이번 수상과 관련, 앞으로 번역상 신인상 제도를 보완·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국립국어원은 9일 AI 기술을 활용한 글쓰기 채점·첨삭 체계인 ‘K-로봇’(가칭)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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