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서재
만약 오드리 로드에 대해 이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자미’(디플롯)는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올 책이다.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 교사, 전사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시인. 이민자 가정 출신의 흑인 여성이자 레즈비언이라는 겹겹의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자미’를 통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자미’가 로드의 서너 살 무렵이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를 순차적으로 다루는 자전적 작품임에도 불구, 오직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드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비롯하여 첨예한 사회문제를 위해 맞서 싸우길 주저하지 않았던 투사이자 시대의 ‘목소리’였으나 ‘자미’에서 그런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서두에 로드가 스스로 언급했듯(“‘오늘의 나’라는 여성이 되기까지 나는 어떤 이들에게 빚을 졌는가?”), 그가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룬다. 책에 ‘오드리 로드 자전신화’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찾고 세상을 이해했던 로드는 자신이 사랑했고 유대감을 나누었던 이들과의 사이에서 배운 풍부한 감정과 깨달음을 낱낱이 풀어놓는다. 사랑이 필요했던 어린 로드에게 엄하고 차가운 태도로 깊은 상처를 남겼으나 실은 그 자신도 연약하고 불안한 이민자 여성이었던 로드의 어머니, 어린 시절의 단짝 친구이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제니, 학창시절 어울렸던 ‘낙인찍힌 자들’,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친구들, 한때 로드를 구원하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고통의 원인이 되고 말았던 영혼의 동반자 뮤리얼, 그 밖의 많은 이들. 이 세상의 다른 많은 사람처럼 로드의 인간관계 역시 늘 순탄치만은 않았다. 배신과 좌절이 존재했고 상처와 눈물로 얼룩질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는 끊임없이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단일한 관계 속에서도 사랑과 증오, 연민과 죄책감, 질시와 불안 등 무수히 많은 감정이 존재함을 깨닫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배워나갔던 로드는 그러한 사랑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저마다 나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나 자신의 일부면서도 나와는 별개인, 너무나도 다른 나머지 그를 알아보기 위해서 자라나고 뻗어 나가야 했던 귀중한 일부분을 내가 사랑했던 자리에. 그렇게 자라다가 우리는 헤어짐에 이르렀다.” 이 책이 사랑으로 소통하고 사랑으로 완성된 사람의 이야기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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