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나훈아 ‘울긴 왜 울어’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방구석 1열은 오죽할까. 자료를 보니 10년 전(2013) 평일 시청률 1위는 월화드라마 ‘굿닥터’(KBS 2TV),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SBS)였고 그보다 10년 전(2003) 월화엔 드라마 ‘다모’(MBC), 수목엔 드라마 ‘올인’(SBS)이 대세였다.

옛날얘기로 밑밥을 깐 건 작금의 트로트 열풍 때문이다. 2023년 벽두에 화요일과 목요일 시청률 1위는 드라마도 아니고 지상파도 아닌 ‘불타는 트롯맨’(MBN)과 ‘미스터트롯2’(TV조선)다. 도대체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거의 화를 내다시피 하는) 지인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일단 안심시켰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 주변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니 사태를 끝까지 지켜보자며 달랬다.

드라마가 끝나도 명대사는 남는다. 사극 ‘다모’에선 ‘아프냐 나도 아프다’가 시청자를 홀렸다. 그 상황에서 만약 주인공이 ‘아프냐 진짜 아프냐’라고 다그쳤다면 어땠을까. ‘다모 폐인’은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음악동네도 마찬가지다. 무대 위 그 사람의 아픔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순간, 노래는 공감과 연민의 매개가 된다.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현철 ‘사랑은 나비인가 봐’) 기어코 자정을 넘기게 만드는 트롯맨들을 나무랄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양 채널은 요일을 바꿔가며 출연자들의 우정과 경쟁을 전국에 중계한다. ‘미스터트롯 시즌 1’의 연출팀이 방송사를 옮겨 ‘불타는 트롯맨’을 제작하는 연유로 두 프로의 진행방식은 상당히 닮았다. 제2의 임영웅을 찾는다는 예고편을 보고 지원자는 물론 심사위원들도 망설였을 것이다. 의리냐 실리냐. 한때는 같은 편이었지만 지금은 갈라섰으니 방송사와 제작진의 승리욕 또한 불타오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와 몽키스의 노래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That was Then, This is Now)은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는 세태를 제대로 할퀸 제목들이다.

경연장엔 웃음꽃과 눈물바다가 공존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게 성현의 조언이지만 현실에선 ‘올드보이’의 냉소가 더 먹힌다. “웃어라, 모든 사람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기량이 엇비슷할 때 희비를 가르는 건 선곡이다. 좋은 노래가 아니라 맞는 노래를 골라야 한다. 옷으로 비유하자면 화려한 옷, 유행 타는 옷이 아니라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사이즈에 맞고 색상과 디자인을 소화할 수 있는) 옷을 입어야 런웨이 끝까지 걸을 수 있다.

출연자들이 선택하는 최다 원곡가수는 나훈아다. 창법이나 표정을 흉내 내는 사람은 많지만 중요한 건 노래에 담긴 경험과 지혜를 절절히 표현하는 능력이다. ‘웃음이야 주고받을 친구는 많지만 눈물로 마주 앉을 사람은 없더라.’(나훈아 ‘사나이 눈물’) 팀원일 땐 동고동락(‘죽어도 못 보내’)하다가 데스매치의 순간부터 동지는 적이 된다. 상 받은 자 옆에는 상처받은 자가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아바(ABBA)의 노랫말이 불변의 풍경화로 전시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승자가 다 가질 때 패자는 그 곁에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다.’(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s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어차피 인생이란 연극이 아니더냐. 울지마 울긴 왜 울어 바보처럼 울긴 왜 울어.’(나훈아 ‘울긴 왜 울어’) 일희일비는 인생의 낭비다. 10년 후에도 살아남길 원한다면 다음 처방전을 시음해 보라. ‘어제 힘들었던 순간들은 모두 지나간 것일 뿐 내겐 더 많은 날이 있어…지금 힘겹다고 생각하는 날들도 언젠가 다가올 날에는 다시 돌아오고픈 시간일 거야.’(봄여름가을겨울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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