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전증의 날 ‘인식개선 포럼’
“면제 권유 받아도 군대갔는데
병역면탈 악용에 허탈함 느껴”
수십년 인식개선 노력에 찬물
‘가짜 뇌전증’ 오해받을라 한숨
“뇌전증 환자는 오히려 군대에 가고 싶어 해요. 뇌전증으로 병역을 면제받으면 삶에 커다란 낙인이 찍히거든요. 그러면 정상적으로 취업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심재신 뇌전증 환자모임 대표는 14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진짜 환자들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데, 가짜로 뇌전증을 연기하면서 군대를 빼려고 한 연예인들을 보면 너무 허탈하다”고 한탄했다. 그는 담당 의사로부터 군 면제 권유를 받았는데도 자진해서 입대했다. 군대에서 겪을 불편함보다 뇌전증으로 면제를 받은 후 생길 제약이 더 두려워서였다고 한다.
전날 ‘세계 뇌전증의 날’을 맞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뇌전증 인식개선 포럼에는 50명이 넘는 뇌전증 환자와 그 가족이 모였다. 이들 역시 최근 뇌전증을 악용한 연예인 등의 병역 비리 사태에 큰 상실감을 보였다. 수십 년에 걸친 뇌전증 인식개선 활동이 한 번에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특히 입대를 앞두거나 이미 군 면제를 받은 남자 환자들은 앞으로 더한 오해와 싸워야 한다는 근심에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군에 갈 나이가 된 심모(19) 씨는 “이제 뇌전증으로 면제를 받으면 ‘너도 병역 비리 아니냐’는 의심부터 받게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군 면제를 받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모(25) 씨도 “혹시라도 취업에 불이익이 있을까 우려된다. 가짜들 때문에 왜 진짜 환자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큰 병’이라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뇌전증 환자 대다수는 약물 복용만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드라마 등에서는 거품 물고 쓰러져 깨어나지 못하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은 수많은 차별에 마주한다. 뇌전증 환자이면서 인식개선 활동가인 지주희(23) 씨는 “뇌전증이 있다는 걸 들켜서 파혼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증상을 보이자마자 해고 통보를 받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고 전했다.
뇌전증 환자들은 증상을 말하지 못하고 음지로 숨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집계된 뇌전증 환자는 약 15만 명인데, 한국뇌전증협회는 그보다 더 많은 37만 명가량의 환자가 있다고 추산한다.
신원철 대한뇌전증학회 사회위원장은 “뇌전증 치료의 국제구호는 ‘아웃 오브 섀도(Out of shadow)’다. 즉, 뇌전증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니 숨지 말고 나와달라는 의미다. 병역 비리에 뇌전증이 악용되는 지금, 정부와 시민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수한 기자 hanih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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