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혜 작가는 전시관 창문에도 비닐 스티커를 붙이고 ‘마술봉’이라고 이름 붙였다.
홍승혜 작가는 전시관 창문에도 비닐 스티커를 붙이고 ‘마술봉’이라고 이름 붙였다.


■ 홍승혜, 무지갯빛 작품전 ‘복선을 넘어서 Ⅱ’

1997년 ‘포토샵’ 그래픽 활용
모노톤 격자무늬 작품으로 유명
디지털과 예술의 결합모델 평가

이번에는 어도비 프로그램으로
별·타원 등 평면·입체작품 선봬
알록달록 색감에 벌써 봄 온 듯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전시 개막일부터 관객이 북적였다. 젊은 대학생들부터 노년의 부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서울에 갤러리 투어를 왔다는 부산의 미술 동아리 여성들도 보였다. 그의 작품 마니아들이 많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홍승혜(64) 작가의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Ⅱ·Over the Layers Ⅱ’에서였다.

한 관람객이 픽토그램 인형을 보고 있다.
한 관람객이 픽토그램 인형을 보고 있다.


국제갤러리 서울점에서 지난 9일 시작한 전시는 2004년 같은 곳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 후속편이다. 홍 작가의 브랜드였던 픽셀 기반의 모노톤 그리드(Grid·격자무늬) 작업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색상의 벽화와 곡선형 조각, 설치 작품을 보여준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가(Over the Rainbow)에서 빌려온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무지갯빛의 작품에서 이상향의 파랑새를 좇는 꿈을 만날 수 있다. 작품 아래 깔려 있는 것을 다층적으로 상상하라는 의미에서 ‘복선’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이 작가 설명이다.

홍 작가는 당대의 큰 화두인 디지털 기술을 미술의 질료로 끌어오는 작업으로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1997년에 연 전시 ‘유기적 기하학’은 당시 새로운 그래픽 기술이었던 ‘포토샵’을 활용해 픽셀로 구성한 격자무늬 작품을 선보인 것이었다. 사각형 그리드가 뿜는 독특한 미감은 기술과 예술의 동행에 대한 사색을 이끌었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에서 전망이 엇갈리는 디지털 기술을 예술이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그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작가는 2004년 개인전에서 사각 그리드를 탈피하려는 시도를 보였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걸 분명히 했다. “내가 스스로 만든 ‘격자무늬의 감옥’에서 25년 동안 안주했으니, 이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 작가 의지이다. 회화를 전공한 그는 다양한 색채의 물감으로 풀, 꽃들을 그렸던 과거를 떠올렸고, 그걸 컴퓨터 기술로 구현하기 위해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 프로그램 사용법을 새로 배웠다. 이번 전시장 1관의 바깥쪽 공간에서 어도비를 활용해 만든 평면 작업을 선보인다. 별, 꽃, 타원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가구처럼 보이는 ‘부채 서랍(Fan Drawer)’은 평면 이미지들이 입체화하는 과정을 엿보게 한다. 1관의 안쪽 공간은 선반, 테이블 등으로 보이는 입체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실용 디자인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허문다.

3관은 형형색색의 꽃들로 꾸민 무대에서 픽토그램(Pictogram) 인형들이 춤을 추는 무도회로 펼쳐진다. 전시장에서 울리는 음악은 홍 작가가 작곡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든 것이다.

전시장을 다 둘러보고 나면, 봄빛이 가슴에 절로 스민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작품들 덕분에 미리 봄을 맞은 듯한 느낌이다. ‘오즈의 마법사’가 보여줬던 환상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그리움이 계절을 앞당긴 셈이다.

유년의 천진한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작품이 오랜 공력에 의한 것임은 예술 작업의 역설(逆說)이다. 작가는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나이가 들고 보니 자연스러움도 충분히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전시는 3월 19일까지.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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