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출퇴근 시간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통근시간 20분 증가는 행복도에 5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직주근접 아파트’가 모든 직장인의 꿈인 시대. 책은 이것이 ‘꿈’에 머물면 안 된다면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15분 도시’를 제안한다. 주거, 일, 공급, 의료, 교육, 문화 6가지 사회적 기능이 15분 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 행복에 척도가 없다지만, 일단 각자 삶의 질을 돌아볼 순 있겠다. 지금 당장 15분 내 가능한 건 몇 개나 되나.
프랑스 파리 제1대학 교수이자, 파리시 도시 정책 고문인 저자는 ‘15분 도시, 30분 영토’ 개념의 창안자다. 저자는 도시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기능을 걷거나 단단한 이동수단으로 갈 수 있는 근접 거리 안에 배치해야 우리가 도시에서의 삶을 영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국토 단위로 확장한 것이 ‘30분 영토’. 책은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축”이며 도시 구조의 취약성을 타개하고, 주민과 영토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유용하다고 강조한다. 2020년 초 당시 파리시장은 재선 공약으로 ‘파리 15분 도시’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현재 유럽 도시 혁신의 상징이 됐다. 콜롬비아 보고타·미국 포틀랜드·호주 멜버른 등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도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 각국 도시로 확산하고 있다. 국내에선 부산과 제주가 구체적인 실행에 들어갔다.
‘15분 도시’는 단순히 편의 기능을 근거리에 두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동안 우리가 도시와 맺어온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저자 역시 ‘15분 도시’의 목적에 대해 “근접성이 만남을 독려하고, 각종 분리와 차별에 맞서 싸우며, 취약한 이들이 이웃의 지원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도록 상호부조·연대·공유·타인에 대한 보살핌을 키워가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공간과 시간을 분할·분리해 끊임없이 더 빨리 나아가라며 부추기던 도시가, 사회적 유대가 가장 소중한 덕목이 되는 장소로 탈바꿈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15분 도시’의 핵심 가치를 설파하는 책은 도시 계획에 철학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와 지리학을 아우르는 도시 인문학서이자 사회 문제와 도시 복잡성을 연구한 사회과학서이기도 하다.
정책 입안자, 도시·건축 관련 전문가와 연구자들, 그리고 행복한 삶의 질적 가치 기준을 중요시하는, 오늘의 도시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눈’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도시에 살 권리가 있다. 이때 진정 필요한 건 무엇일까. 삶, 도시,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필독서다. 208쪽, 1만74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