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네 몬테로 평등부장관 주도 개혁
우려의 시선도 존재…"여성 낙인 초래"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국가로 꼽힌다. ‘무적함대’를 앞세워 전 세계를 제패했던 경험과 막강한 가톨릭 교세, 여전히 국왕을 두고 있는 입헌군주제까지 사회 곳곳에 보수 색채가 짙게 묻어있다. 하지만 이런 스페인에 진보의 바람이 불고 있다. 유럽 최초로 생리 휴가 제도를 도입했고,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변경하는 절차를 대폭 완화했다. 낙태 가능 나이도 낮췄다. 도대체 스페인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페인 상원은 16일 생리통을 겪는 직원에게 유급 병가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찬성 185표, 반대 154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생리통으로 근무가 어려운 직원은 진단서만 있으면 필요한 만큼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병가 기간은 의사가 결정하며 비용은 고용주가 아니라 사회보장제도가 부담한다. AFP통신은 "생리 휴가를 도입한 국가는 인도네시아와 일본, 한국, 대만, 잠비아 등 소수"라며 "유럽에선 스페인이 최초"라고 설명했다.
스페인 상원은 같은 날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의료진 판단 없이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찬성 191표, 반대 60표, 기권 91표로 통과시켰다. 지금까진 2년간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는 증빙서류와 성별과 정체성 사이에 불일치를 느낀다는 의학적 진단서를 정부와 법원에 제출해야 했는데 이를 모두 철폐했다. 다만 12∼13세 미성년자가 성별 정정을 원할 땐 법원 허가가 필요하고, 14∼15세는 부모 또는 법적 보호자가 성별 변경 절차에 함께 참여하도록 했다.
이 같은 스페인의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은 이레네 몬테로 스페인 평등부장관이다. 집권 좌파 사회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한 급진 좌파 ‘포데모스’ 소속인 몬테로 장관은 2020년 취임 이후 각종 개혁 과제를 추진해왔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몬테로 장관의 역할을 집중 조명하며 "혁신과 반발은 항상 얽혀 있다"며 "그가 이끄는 개혁은 황홀한 찬사와 가혹한 비판이 함께 따라다닌다"고 평가했다.
몬테로 장관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나는 정부의 기능이 여성 권리를 강화하는 데 있다고 본다"며 "시민사회의 발전을 이룰 것인지, 아니면 더 비겁하고 보수적인 태도로 돌아갈 것인지 정부는 결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리 휴가 도입과 관련해서도 "이제 여성은 일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스페인 제1야당 국민당은 "여성에게 낙인을 찍어 노동 시장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최대 노동조합 UGT도 "여성보다 남성 채용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오히려 여성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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