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패션계 떠나 창작자로
롯데뮤지엄서 국내 첫 개인전
관념 깬 다양한 표현방법 눈길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얼핏 보면 광고물인데, 실제론 작품이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외벽에 있는 ‘데오도란트(Deodorant)’가 그렇다. 세로 20m, 가로 8m가 넘는 대형 화면은 사람의 땀 냄새를 없애는 제품인 데오도란트를 광고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연스러운 체취를 상품으로 감추려는 현대의 상업화 경향을 풍자한 것이다. 작가는 상품 라벨에 표기하는 성분 표시 대신에 자신의 서울 전시에 대한 정보를 써 놨다. 장난 혹은 작란(作亂)을 통해 풍자의 유희성을 담아낸 작가는 프랑스의 마르탱 마르지엘라(66)다.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인 바로 그 사람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지난 2008년 패션계를 은퇴한 후 순수예술 창작자로 변신했다.
마르지엘라가 롯데월드몰에 있는 롯데뮤지엄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총 50여 점의 설치, 조각, 영상, 페인팅을 선보인다. 작품과 관련한 퍼포먼스도 곳곳에서 펼쳐진다.
전시장에 가보니 평일인데도 관람객으로 붐볐다. 그가 패션계에서 이름이 높았던 데다 한국 첫 전시라는 화제성이 작용한 듯싶다. 역시 젊은 층 관객이 많았으나, 아들과 함께 온 초로의 여성도 있었다.
‘데오도란트’의 다른 버전(340㎝×190㎝)이 자리하고 있는 전시장 입구를 지나면 유럽의 유명 잡지 표지를 소재로 한 ‘헤어 포트레이츠(Hair Portraits)’를 만날 수 있다. 시대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의 정체를 감춘다. 기이한 미감 속에서 저들이 왜 얼굴을 감추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생각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작가 의도는 작품 전편에 흐른다. 모발로 얼굴 전체를 덮은 실리콘 두상 5개를 보여주는 ‘바니타스(Vanitas)’는 인간의 세월을 은유한다. 모발의 밝은색이 회색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며, 죽음으로 가는 삶의 유한성을 사색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 머리카락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은 아버지가 이발사였다는 마르지엘라의 성장 배경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6개의 실리콘 조각이 있는 ‘토르소(Torso)’ 시리즈는 인체 일부를 3D 스캔하며 만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인체 조각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요즘 화제인 넷플릭스 프로그램 ‘피지컬:100’의 무대를 닮기도 했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보다는 그 표현 방법의 다양성을 통해 몸의 기능과 역할 등을 생각하도록 이끈다. 흰 천으로 가려진 조각을 열었다가 감추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작품 재질인 실리콘을 관객이 만지게 함으로써 감각의 확대 경험을 제공한다.
전시장 중간에 자리한 ‘모뉴먼트(Monument)’는 관객이 빈티지 소파에 앉아 건축물 공사 장면 이미지를 보면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음을 듣게 한다. 이 뮤지엄의 공간에 맞게 구성한 몰입형 작품이다.
전시를 다 둘러보면, 마르지엘라가 신체에 천착하며 인간의 삶에 흐르는 시간의 영속성을 화두로 삼고 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대부분 작품이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에 들을 수 있는 도슨트 설명 역시 감상에 참고만 하면 될 뿐이다.
마르지엘라는 전시 기획자에게 자신의 자화상이라며 캔버스를 묶은 뒷모습 이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럴까. 기존 관념을 깨부수는 그의 메시지를 추정해보는 것이 큰 재미이다. 전시는 3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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