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했던 미래지만 너무 빠르다. 한국어가 서툰 일본인이 인공지능(AI) 번역기를 활용해 번역상을 받았고, 챗 GPT는 7시간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썼다. 반감 혹은 긍정. 판단은 각자의 몫인데, 논쟁을 둘러싼 공통적인 감정은 두려움이다. 이제 인간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말인데, 반갑다, 환영한다, 같이 한번 잘 해보자고 인사부터 하는 건 어떨까. AI 시대. 생존이든 공존이든, 재빠른 태세 전환에 실마리가 있고, 그럴 만한 이유도 충분하다.
AI 시대 가장 먼저 없어질 직업으로 번역가가 거론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AI 번역은 위협 아닌 가능성이다. 최근 화제가 된 번역상 사례는 기계 번역의 확산과 함께 부상한 ‘MTPE’(Machine Translation Post-Editing)가 적용된 실제 예다. MTPE는 기계 번역 결과물을 숙련된 번역가가 확인, 수정하는 사후 편집이다. 물론, 수상자가 한국어 초심자로 밝혀지면서 적잖은 논란이 일었으나, 접근 방식과 진행 과정은 MTPE의 전형이다. 제도 마련과 윤리적 논의 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으나, 사실 우리가 ‘번역의 미래’나 ‘AI와의 공존’을 모색할 때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번역가의 손과 머리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필요하다는 것. 심지어 어떤 연구자는 “사람의 일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AI 덕에 작업 시간이 단축되면 정보와 지식, 문화 콘텐츠, 문학 작품의 번역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포스트 에디팅’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다. 이것은 이미 20여 년 전 등장한 주장으로, 아직 증명되진 않았다. 그러나 당시 기계 번역의 수준은 지금과 다르다. 앞으로 20년은 전혀 다른 미래다.
기계 번역의 품질을 평가·관리하는 것도 인간의 일이다. 따라서 ‘외국어 공부 무용론’도 설득력을 잃는다. 외국어를 잘한다는 것은 언어의 문화적 맥락까지 잘 이해하는 것을 포함하고, 이는 번역 감별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따라서 과거보다 더 고도의 외국어 능력을 지닌 번역가가 귀해진다. 예컨대,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것에 기계 70%, 사람 30%의 업무량이 부과되면, 사람이 100% 번역하던 시절보다 더 많은 책을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이 30%는 과거보다 더욱 밀도 높고 전문적인 작업이다. 한마디로 AI는 번역 일을 축소하고 번역가를 없애는 게 아니라, 번역 일을 확대하고 번역가에게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AI의 가공할 능력을 떠올리면, 번역은 아주 작은 분야다. 하지만 가장 빠르게 가장 깊숙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AI가 재앙일지 축복일지는, 이곳에서 어떤 시나리오를 쓰느냐에 달렸다. 또한, AI 시대 경쟁력이란 그 과정에서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것에 있을 터, 맨 첫 장에 법적·사회적 제도 마련과 윤리적 고찰이 있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자니 입이 아프다.
텔레비전이 라디오를 죽이지 않았고, 복사기와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지 않았다. 오디오북은 출판시장 규모를 키워주고 있다. AI 번역과 챗 GPT 출판이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철학을 공유한다면, 인간 사회를 더 이롭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 될 것이다. 곧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AI와 동시대를 사는 자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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