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을 펼친 모습.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을 펼친 모습.


■ 보물 지정 앞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환수의 재구성

‘병인양요때 소실’ 알려졌던 죽책
입찰가 140만원에 佛 경매 등장
현지에서 고유 금박·내용 확인
라이엇게임즈 기부금으로 매입

보물 발견·추적·실사·환수 담당
‘국외문화재재단’ 김동현씨 주축
“최근 약탈문화재 환수 요구대신
소장자·경매사와 합의 후 거래”


“(…) 아! 너 조씨(趙氏)는 용모가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집안에는 효근(孝謹)을 전하였다. 유한(幽閑)한 덕성은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이루어졌으며, 몸가짐과 말씨는 친히 간선(簡選)하는 날에 알맞았다. (…)” 고종을 대신해 수렴청정한 것으로 잘 알려진 신정왕후(1808~1890), 즉 ‘조 대비’는 풍양 조씨 가문을 대표하는 권력자이자 세도정치의 상징이다. 위는 1819년(순조 19) 10월 11일, 아직 어린 ‘조 대비’가 효명세자빈으로 책봉된 날에 쓰인 죽책문(竹冊文)의 일부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을 책봉할 때 책(冊)을 제작했다. 주인이 세상을 떠나면 책은 종묘에 봉안됐기에 왕실 밖으로 유출될 수 없다. 그런데, 150여 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이 책, 바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한 프랑스 경매 사이트에 올라왔고 공예품들 사이에서 입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 관련 문서’라는 간략한 설명. 시작가는 겨우 1000유로(약 140만 원)였다.

◇‘매의 눈’으로 보물 발견… 경매 중지를 요청하다 =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김동현 부장은 당시 조사활용팀에서 해외 경매에 나온 한국 문화재 모니터링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를 발견, 추적하고, 수차례 현지 실사를 거친 후 직접 (그의 표현대로) ‘모시고’ 왔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보물 지정을 앞두고 있다. 하여, 김 부장으로부터 환수 과정과 못다한 뒷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은 그 자체로 문화재 환수 최신 트렌드다. 또한, 촘촘한 연구와 조사, 지난한 합의와 운반 등 모든 과정에서 수고하는 이들의 풍경이다.

“애초 경매에 나오면 안 될 유물이었어요.” 최근 서울 마포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만난 김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전시 도록에 실려야 할 조선 왕실의 책이 경매 도록에 매물로 나온 것부터 충격이었다. “오로지 왕실에서만 제작했고, 민간에서 비슷한 물품을 만들거나 한 사례도 없죠. 죽책이 해외 고미술 시장에 나타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어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의 전체 길이는 102㎝. 각 17.5㎝짜리 면 6개가 황금색 변철로 연결돼 있다. 각 면은 다시 대나무 6조각을 가지런히 엮어, 그 위에 금니(金泥)로 글을 새겨 넣었다. 경매사는 유물의 가치를 잘 몰랐다. 한 페이지에 백자와 목가구, 그리고 죽책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게다가, 책을 구성하는 6면 중 단 두 면만 공개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재단은 긴급하게 경매 중지 요청 공문을 보냈고, 경매사로부터 보다 자세하고 선명한 사진을 받아 조사에 착수했다. 김 부장은 “만일 경매사가 죽책의 성격과 가치를 알았더라면 죽책 한 점만으로도 여러 페이지를 할애했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긴박한 진위 조사… 병인양요 때 소실된 게 아니다 = 조선 왕실에서는 죽책 외에도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옥책 또는 금책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과 쓰인 재료, 만드는 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그림과 함께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애초 죽책 안에 새겨진 내용의 핵심이 ‘기묘년에 조씨를 왕세자빈으로 봉한다’는 것이기에, 김 부장과 재단 측은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라고 추정했으나 이 유물은 지금껏 병인양요 때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했다. 또한, 진위도 밝혀야 했다.

조사 결과, 사진 속 죽책의 내용은 ‘순조실록’에 기록된 것과 거의 일치했다. 순조 19년 10월 11일자 ‘조만영의 딸 풍양조씨를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서울대 규장각 소장 ‘효명세자가례도감의궤’(1819)에 죽책문 전문이 실려있었다. 경매에 나온 것과 내용, 그리고 그림까지 완전히 일치. 작지만 정밀한 그림 속에 변철에 새겨진 당초무늬까지 선명했다. 김 부장은 “가품일 거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죽책과 똑같은 모방품을 만드는 데에 너무 많은 돈과 기술이 투여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웃었다.

유물이 병인양요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 이유는 당시 강화도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해 간 로즈 제독의 목록에 이 유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 해군은 의궤 등을 약탈하면서 철수 직전 강화행궁과 외규장각에 불을 질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부터 2011년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에도, 도서관 소장 유물 목록에도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없었다. 약탈 당시 해군 중 누군가 슬쩍한 게 아닐까. 재단 측은 “당시 의궤와 함께 유출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전했다.



◇현미경·007 가방 챙겨 특파… 파리에서 서울까지 = 김 부장은 곧장 파리로 출국했다. 준비물은 현미경. 사진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금니’를 확인해야 했다. 죽책의 글은 금을 곱게 갈아서 진흙처럼 만든 후 이를 새겨 넣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사진상으로는 검거나 회색빛으로 보였다. “오랜 세월 쌓인 먼지 탓이 아닐까 추측했어요. 현미경으로 보니 금빛이 반짝이고 있었어요.”

재단은 매입 가격 산정 회의에 들어갔다. 경매사 측에 경매 중지 요청을 내렸고, 한국의 유물인 것을 증명한다고 해도, 최초 입찰가에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초 시작가 140만 원. 과연 재단은 이 유물을 얼마에 사들였을까.

죽책의 매입 가격은 2억5000만 원으로 알려졌다. 해외 문화재 구입에 사용할 수 있는 재단의 예산은 이에 한참 못 미친다. 대신 2012년부터 꾸준히 문화재 환수, 복원 등을 후원하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기부금으로 구매가 가능했다. 국내에선 ‘약탈 문화재’라면 이유 불문 무조건 돌려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별로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다. 150년이나 지났고, 이미 여러 경로를 거쳐 지금의 개인 소장자를 만난 유물에 원리 원칙만을 들이댈 수는 없다. 소장자, 경매사 등과 원만한 합의를 거쳐 들여오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 지금의 문화재 환수 경향이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어떻게 한국 땅을 밟았을까. 2017년 6월 발견, 7월 매입했다. 그리고 2018년 1월, 죽책은 비행기 여객칸에 실려 귀환했다. 현지 문화재 전문가들을 통해 파리 공항까지 운반됐다. 죽책을 실은 ‘007 가방’은 흔들림 방지를 위해 공간을 꽉 채워 넣었고, 재단 직원들은 좌석을 하나 더 구매했다. 당시 운반을 위해 김 부장과 조사활용팀의 김상엽 팀장이 동행했고 죽책은 두 사람 사이에 ‘앉았다’. 끈을 연결해, 두 사람의 허리춤에 묶었고, 자리를 이동할 때나 잠을 자야 할 때는 번갈아 지켰다. 김 부장은 “도저히 좌석 아래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온전히 환수될 때까지는 모든 게 대외비여서, 내용물을 말할 수도 없고…. 승무원분들께 너무 죄송했어요.”

최종 도착지인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 도착한 죽책은 약 6개월가량 보존처리를 거쳐 지금은 연중 내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 국보 지정, ‘구입’ 한 죽책은 되고 ‘반환’받은 외규장각 의궤는 안된다?

‘의궤’영구임대 돼 소유권 없어
최근 환수 문화재 33% ‘구입’
소장자 자진반납 기대 어려워


올해 보물 지정이 확실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의 귀환은 환수 방식이나 품고 있는 사연 등 눈여겨볼 지점이 많다.

이 유물은 문화재 유통 조사, 즉 해외 경매 모니터링 중에 발견됐고, 이후 전문가들의 조사와 감정가 산정을 거쳐 구매했다. 문화재를 ‘구입’한 사례다.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는 주로 약탈된 것이 많았고, 그래서 ‘환수’ 하면 빼앗긴 것을 되돌려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병인양요 때 유출돼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던 외규장각 의궤처럼 약탈 사실이 명확해 국가 간 협상으로 반환하기도 하지만, 이제 이런 경우는 드물다. 또한, 최종 소장자의 자진 반납 등을 기대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이 죽책 역시 약탈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견 당시 소장자는 파리에서 고미술상을 하던 조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했다. 국제법 등을 검토 후 재단은 구입을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판단했다. 재단이 지난 10년간 환수한 문화재 933점 중, 33%가 매입(경매낙찰 17.2%) 방식이었고, 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문화재를 경매에서 사들이는 것에 반감도 존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한 ‘득’도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으로부터 영구 임대 형식으로 반환받은 외규장각 의궤는, 그 가치와 의미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보로 지정할 수 없지만, 의궤와 함께 프랑스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올해 보물 지정이 확실시되고 있다. 의궤의 소유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지만, 재단이 구매해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한 죽책은 온전히 우리 소유이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스를 떠돌다가 눈 밝은 ‘문화재 지킴이’에 의해 고국으로 돌아온 죽책을 보려면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장으로 가면 된다. 박병선 박사의 노력으로 2011년 귀환한 ‘외규장각 의궤’를 먼저 만나고 와도 좋겠다. 같은 시기, 같은 곳으로 떠나게 됐으나, 다른 사연을 품고 돌아온 유물들이니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환 10주년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儀軌), 그 고귀함의 의미’가 열리고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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