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 전주김제완주축협에 걸린 ‘자수 권고’ 현수막.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 전주김제완주축협에 걸린 ‘자수 권고’ 현수막. 연합뉴스


당선되면 억대 연봉·거액 업무추진비·인사권까지 권한 막강
특정인 장기 집권 조합서 방만 경영→재산 손실 발생도…선거판 변수?



‘오는 3월 8일 실시하는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금품(홍어 등)을 받은 조합원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자수해 과태료를 감경·면제받기를 바랍니다.’

이달 초 전북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 전주김제완주축협 지점과 사무소 등 9곳에 이런 내용의 자수 권고 현수막이 내걸렸다. 다음 달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금품 살포 제보를 받은 전북도선거관리위원회가 선제적으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파장이 커지자 홍어를 선물 받은 유권자 다수가 자수했다.

이처럼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불법 행위가 위험수위를 넘어서면서 ‘선거 무용론’까지 일고 있다. 이번 조합장 선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관리를 위탁받은 뒤 치르는 세 번째 선거로, 전국 1347개 조합(농협 1115개·수협 90개·산림조합 142개)의 대표자가 선출된다.

21일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16일 현재 조합장 선거 관련 위법행위 조치 건수는 총 149건(고발 62건·수사 의뢰 3건·경고 등 84건)이다. 전체 고발 건 중 기부행위가 52건으로 84%에 달하고 있다.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는 조합원에게 선물을 제공한 혐의(공공단체 등 위탁 선거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모 농협 조합장 선거 입후보 예정자 A 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A 씨는 2021년 추석 때 조합원 162명에게 486만 원 상당, 지난해 설에는 조합원 288명에게 518만 원 상당의 선물을 각각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조합원 60여 명에게 36만 원 상당의 선물을 주는 등 모두 1040만 원 상당의 선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9일 경북 봉화에서는 조합원에게 현금 100만 원을 건넨 입후보 예정자가 현장에서 적발됐다. 앞서 지난 6일 대구 동구에서는 입후보를 앞둔 농협 조합장이 조합원들에게 전복을 선물했다가 경찰에 고발됐다. 해당 조합장은 지난해 9월 추석 선물로 개당 4만5000원짜리 전복 선물 세트 총 117만 원어치를 조합원 등 26명에게 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남에서는 이번 선거와 관련해 총 10건에 12명이 경찰에 고발됐다. 기부행위가 9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인쇄물 시설 이용이 1건으로 나타났다.

조합장 선거에서 이처럼 불법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조합장이 가진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조합 규모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억대 연봉에 자가용이 나오고 거액의 업무추진비가 주어진다. 인사권은 덤이다. 또, 조합별로 유권자 수가 많지 않고 지역에서 혈연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번 당선되면 장기간 연임 등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며 기초·광역의원이나 자치단체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아예 정치권에서 활동하던 기초의원 출신이 조합장으로 체급을 낮춰 장기 집권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서남부의 한 농협의 경우 구의원 출신 조합장이 46년 넘게 장기 재임하고 있으며, 서울 동남권의 한 농협에선 장인과 사위가 49년 간 조합장을 대물림하고 있다. 특정 인사의 장기 집권은 조직 장악력과 업무 능력이 탁월함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방만 경영과 인사 비리 발생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장기 재임 조합장이 있는 서울의 한 농협 조합에서는 최근 4년간 회수하지 못하고 손실 처리한 대출금만 129억 원에 달하고 있으며, 본업과 무관한 농지 매입에 조합 재산을 사용하는 바람에 연간 환산치로 18억 원의 손실을 떠안게 된 조합도 있다. 해당 조합에선 손실 발생에 불만을 품은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사정 기관 고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한편, 선관위는 조합장 선거 후보자 등록 신청을 이날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전국 담당 시·군·구 선관위에서 접수한다고 밝혔다. 신청 기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등록 마감 후 추첨을 통해 후보자 기호를 결정한다. 등록을 마친 후보자는 23일부터 선거일 전날까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노기섭 기자
노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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