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재벌남편 유산 상속받은 부인
음악원 연봉의 2배 금액 지원
1204통 편지 통해 교감 나눠
절교선언 서신 받고 실의 빠져
“이 작품은 내면의 충동에 의해 쓴 작품이고, 나의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됐으며, 작품의 모든 면에서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입니다.” 차이콥스키(1840∼1893)가 관현악곡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48’을 완성했을 당시 한 여인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클래식 작곡가들을 연구하는 데는 편지가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물론 가족이나 동료들에 의한 증언들 또한 중요한 사료로 쓰이지만. 본인이 직접 남긴 편지만큼 정확한 것은 없다.
당시 이 편지의 수취인은 차이콥스키의 후원인인 나데즈다 폰 메크(1831∼1894)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차이콥스키에겐 후원인 이상의 각별한 인물이었다.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1876년부터 14년간 후원을 받았는데 이 기간 동안 서로 주고받은 편지의 수가 무려 1200여 통에 달한다. 미망인인 폰 메크 부인의 남편은 철도 재벌이었다. 폰 메크는 세상의 이치에 밝았는지 어느 날 공무원이었던 남편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앞으로 러시아에도 철도사업이 번성할 것 같으니 하루빨리 철도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녀의 조언대로 남편은 철도사업을 시작했고, 호황 속에 큰 부를 축적하게 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부인은 모든 유산을 상속받아 큰 부를 얻었다. 1876년, 당시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경도되어 있던 그녀는 차이콥스키에게 후원을 약속한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주는 차이콥스키의 연봉은 3000루블 정도였다. 그런데 이 부인이 연금 형식으로 약정했던 후원금액은 그 두 배인 6000루블이었다.
차이콥스키는 더 이상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38세가 되던 해인 1878년부터는 아예 음악원 교수도 사임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음악적 영감과 자양분을 흡수,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물론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경비 또한 폰 메크 부인이 별도로 지급해줬다.
이 환상적인 후원에 폰 메크 부인은 단 하나의 조건을 달았다. ‘절대 서로 만나지 않을 것.’ 얼굴조차 모르는 후원인에게 이런 막대한 금액을 지원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차이콥스키는 달랐다. 차이콥스키는 동성애자였다.
그렇게 14년간 후원이 이어졌고 1890년 어느 날, 차이콥스키는 부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엔 “재정 상태가 악화돼 더 이상 후원해 줄 수 없게 됐으니 우리의 관계도 여기서 끝을 맺자”는 일종의 절교선언이 담겼다. 사실 당시 부인의 재정 상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실망해서 떠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만 할 뿐 그녀가 후원을 끊은 이유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다.
차이콥스키는 감정의 진폭이 큰,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연인처럼 또 엄마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돌봐준 여인에게 버림받은 차이콥스키는 큰 실의에 빠졌고,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후원인이었던 폰 메크를 원망하고 저주하며 살았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현을 위한 세레나데
차이콥스키가 남긴 유일한 현악 합주를 위한 세레나데이자 드보르자크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와 함께 현악 세레나데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작품이다. 1880년 9월 작품에 착수해 10월에 완성했다. 초연은 1881년 10월 30일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음악협회에서 에두아르트 나프라브니크의 지휘로 이뤄졌다. 총 4악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낭만적 애수와 민족적 감성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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