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강행 움직임에 정유업계 ‘한숨’

미국, 평균 소매가격 공개하지만
회사별 가격 공개는 규정상 금지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는 규제
명백한 영업비밀, 위법 소지도”


“지금도 세계적으로 가장 강도높은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시장경제 원칙과 규제 혁파를 표방하면서 되레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는 건 아닌지 답답하네요.”

정부의 석유제품 가격공개 확대 강행 움직임에 정유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는 오는 24일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한다. 정유사가 일반 대리점과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도매가를 지역별로도 공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는 회사별로 매주 전국 평균가격만 공개한다.

정유업계는 현행 제도만으로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평균 소매가격을 공개할 뿐 조사 대상 회사를 알 수 있는 데이터는 규정상 공개가 금지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시장이 자유화된 국가에서 개별 정유사 가격정보를 공개하는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정유업계가 연간 누적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게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회사 이익으로 흡수한 탓이라고 판단, 가격공개 확대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유류세 인하분을 100% 가격에 반영했고,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8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항변한다.

가격공개 확대가 현행법 위반 및 위헌 소지까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는 ‘장관은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판매가격을 공개한다’고 돼 있다. 도매가격은 구매원가와 각종 비용을 포함하므로 판매대상별, 지역별 가격은 명백히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정부가 추진 중인 방안은 이미 2011년 총리실 규개위 예비심사 전 단계에서 영업비밀 침해 우려가 있다고 철회했던 내용”이라며 “헌법상 사영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격공개 확대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되레 지난 2009년 업체별 전국 판매가격을 공개하는 현행 제도를 도입한 이후,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정유사의 가격 상향 동조화’ 현상이 발생했다는 분석을 제시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향이든 상향이든 가격을 수렴하게 되면 결국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담합으로 규정될 가능성이 크고 기업을 범법자로 내모는 셈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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