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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하는 뇌

다이애나 도이치 지음
박정미·박종화 옮김│에이도스

귀로 듣는 소리… 뇌에서 해석
착각·왜곡하는 ‘착청’ 일으켜

옥타브 2분할 음의 쌍 듣고
‘올라가는 음 vs 떨어지는 음’
성장 환경 따라 정반대 인지

우리가 ‘진실’이라 일컫는 것
얼마나 다를수 있는지 알아야


착청(錯聽). 착시(錯視)와 달리 낯설다. 일상에선 거의 쓸 일이 없는 이 말은 청각적 착각(illusion)을 뜻한다. ‘왜곡하는 뇌’는 이 현상을 발견해 이름을 알린 음악심리학 거장의 책으로 착청이라는 독특한 현상을 통해 뇌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오류를 설명한다.

일단, 각 장에서 내세운 키워드들부터 흥미롭다. 유령어, 절대음감, 귀벌레, 환청 등. 또,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는 다르게 듣는다는 연구결과도 지나칠 수 없다. ‘착청’은 어렵게 느껴졌으나, 일상의 언어로 구성된 목차가 읽는 이를 단숨에 저자의 ‘청각 실험실’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왜 사람들은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들을까. 또 때로 들리지 않는 것도 듣고, 온종일 같은 노래가 귓가를 맴돌까. 그뿐인가. 저자는 사람들이 사전 지식이 있고 없음에 따라 아주 익숙한 멜로디도 전혀 생소한 것처럼 듣고, 평소 신념이나 정서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를 듣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뇌가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뇌는 착각하고 왜곡하는 것. 즉, ‘착청’이 일어난다. 저자는 시각에 비해 ‘부실한’ 청각 그 자체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한쪽 눈에만 1억2600만 개의 광수용체가 있지만, 귀는 한쪽에 1만5500개의 청각 수용체가 있고, 그중 뇌와 연결되는 건 3500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착청으로 시작한 책은 말과 언어가 음악에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연구로 확장된다. 이른바 ‘반옥타브’ 역설이다. 이는 옥타브를 2분할하는 음의 쌍을 들려줬을 때 어떤 사람은 음이 올라가는 걸 듣고, 어떤 사람은 음이 떨어지는 걸 듣는 현상이다. 이와 관련한 실험에서 저자는 미국 서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영국 남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정반대로 음을 인지한다는 걸 알아낸다. 음을 지각하는 것에 언어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절대음감’에도 해당한다. 저자는 서구권에선 1만 명 중 한 명꼴로 희귀한 절대음감이 중국어나 베트남어 구사자 중에서 비교도 안 될 만큼 많다는 걸 밝혀낸다. 성조 언어 구사자가 비(非)성조 언어 구사자보다 절대음감 습득에서 유리하다는 결론을, 그러니까 음감은 결코 선천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가 ‘착각’이라는 현상을 정상적인 지각 방식으로 설명하기 힘든, 그저 재미있는 예외 현상 정도로 간주하곤 한다면서, 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장치의 고장과 오류를 통해 더욱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장치를 만들어갈 수 있듯이 지각의 오류, 특히 착청은 세상을 올바르게 지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저자의 반세기에 걸친 연구가 집대성된 책이다. 착각에서 출발해 언어와 음악 그리고 인간의 뇌에 관한 탐구까지 옮겨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그의 독창적 연구 기법과 탁월한 통찰력에도 감탄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가 얼마나 울퉁불퉁한지, 얼마나 불완전한지, 따라서 우리가 서로 진실이라 일컫는 것들이 얼마나 서로 다른지, 충분히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 책을 읽어야 할 가장 큰 이유라면 이것이다. 감사하다. 50년 한 우물을 파온 거장의 깊고 넓고 재밌는 지적 세계를 단단하고 간단한 책 한 권으로 맛보다니.

책은 착청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30여 개 음원을 QR코드 형식으로 실었다. 앞서 말한 ‘반옥타브 역설’에서 나는 어느 쪽인지 확인해 보고 싶지 않은가. 절대음감인지 상대음감인지 알아보고 싶지 않은가. 저자의 촘촘하고 정교한 논리를 뇌가 밀어내려고 할 무렵,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원들이 ‘듣고’, 다시 ‘읽기’를 독려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이 과학서를 손에서 끝까지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404쪽, 2만2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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