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학폭 피해자 진술 신빙성 부정 ②학폭 당시 피해 학생이 “웃고 넘겼다” 주장 ③피해자 기질 부각해 학폭 인과관계 부정
교사 “부모가 진술서 코치… 어떻게든 책임 회피”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57·사진) 변호사 부부는 아들 정모 씨가 학교폭력(학폭)을 저질러 강제전학 위기에 처하자, 법률 지식 등을 동원해 전방위 방위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정 변호사 측은 학폭 피해자 및 목격자들의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리거나, 피해자가 “(관련 사건에도) 웃고 넘겼다”며 학폭 당시 피해자의 태도를 부각하고, 피해자의 극단시도 등이 아들 학폭이 아닌 ‘기질 탓’이라 주장하며 사건 인과관계를 최대한 허무는 전략을 썼다. 대개 학폭 피해자들은 “우리 사회와 학교는 대개 학폭의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찾는다”고 호소하는데, 정 변호사 부부 역시 피해 학생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는 식의 방어 전략을 펼친 것으로 분석된다.
26일 정 변호사 아들 행정 소송 판결문을 보면, 2017년 유명 자율형 사립고에 입학한 아들 정 씨는 기숙사 같은 방에서 생활한 동급생 A 씨에게 1학년 1학기부터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언어폭력을 지속해서 가해 이듬해 전학처분을 받았다. 정 변호사 부부는 당시 미성년자였던 아들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전학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19년 4월 최종 패소했다.
정 변호사 부부 측은 아들의 책임 회피를 위해 전방위로 나섰다. 먼저 학폭 피해자의 진술 및 학폭 목격자의 진술 신빙성을 훼손하는 논리를 폈다. 정 변호사 측은 “피해 학생의 진술이 일부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돼 있다” “주변 친구들의 진술이 객관적으로 반영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학교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문제삼았다.
아울러 학폭 당시 피해자의 태도도 물고 늘어졌다. 정 변호사 측은 “피해학생이 원고(정 변호사 아들)나 주변 친구들에게 이의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은 채 웃어넘겼다”고 주장했다. 대개 학폭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두려워 해 학폭 당시에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당시 상황을 가져와 주요 방어 논리로 삼은 것으로 분석된다.
또 정 씨 아들의 행위가 아닌, 피해자의 기질 탓에 피해자가 주장하는 학폭에 따른 후유증이 발생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정 변호사 측은 “언어폭력 정도로 고등학교 남학생이 일반적으로 피해 학생과 같은 피해를 입는다고 보기 어렵고, 본인의 기질이나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피해자 상태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고의 언어폭력과 피해 학생의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아니라,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이라 주장하며 사안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식의 주장도 했다. 실제 2018년 3월22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 회의에서 정 씨 측은 아들의 학교폭력이 ‘언어폭력’이었던 점을 방어 논리로 세웠다. 정씨 부모는 “물리적으로 때린 것이 있으면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A 씨가 입은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고려할 때 다른 학교폭력 행위와 비교해 결코 경미하다고 볼 수 없다. 정씨는 A 씨 외에 다른 학생에게도 유사한 방식으로 모욕을 주는 언어폭력을 행사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까지 유지됐다.
부모가 정씨의 진술을 직접 지도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법률 지식을 가진 정 변호사 부부가 적극 나서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사립고 교사는 2018년 6월 29일 강원도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 회의에서 정 씨의 진술 번복을 지적하며 “반성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 씨 부모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해 2차 진술서는 부모가 전부 코치해서 썼다”며 “우리가 조금이라도 선도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책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증언했다. 교사는 “부모가 많이 막고 계신다”며 “1차로 진술서를 썼는데 바로 부모의 피드백을 받아서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해 다시 교정을 받아오는 상태다. 부모를 만나고 오면 다시 바뀌는 상태”라고 했다.법조계에서는 책임 인정을 하는 순간, 생활기록부 등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기 때문에 아들의 대학 진학 등을 고려해 책임 회피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이 사건으로 정 씨 이름만 들어도 몸이 떨리는 불안 증세를 겪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중등도 우울 에피소드, 공황장애 등으로 입원 치료도 받았다. 2018년 2월부터 학교에 가지 못했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자치위 위원들은 정 씨의 학교폭력을 가해학생 조치 기준상 전학·퇴학에 해당하는 ‘16점’으로 평가했다. 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이 모두 ‘높음’으로 평가돼 각각 3점을 받았다.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는 낮았고(3점), 화해 정도는 ‘전혀 없음’(4점)이었다. 다른 동급생들은 정 씨가 당시 현직 검사였던 아버지를 자랑하며 “아빠가 아는 사람이 많은데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