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움미술관 ‘…군자지향’ 展
국보 10점·보물 21점 등 185점
일본 6개 기관서도 34점 건너와
이건희가 아낀 ‘청화매죽문 호’
화려한 그림장식으로 압도시켜
도둑이 훔치다 깨뜨린 달항아리
300개 조각 복원 형상 등 눈길
글·사진=장재선 선임기자
“가장 단순한 빛깔은 백색이지만 우리 조선 도자기에 나타난 이 단순한 백색은 모든 복잡을 함축해 그렇게 미묘할 수가 없다.”
백자를 사랑했던 김환기 화백의 말이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28일 개막하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전을 미리 보니, 김 화백의 찬탄이 절로 떠올랐다. 모든 작품이 흰색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빛으로 제각기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이번 전시는 국내 대표 사립미술관인 리움이 재작년 재개관한 후 첫 고미술 기획전이다. 도자기만 선보이는 전시로는 지난 2004년 개관 이후로 처음이다.
총 185점이 나왔는데, 특히 국보 10점, 보물 21점이 출품돼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조선백자(59점)의 절반 이상을 한 자리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있기 힘든 규모이다. 전시 기획자인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왕실을 중심으로 중앙에서 생산된 것 뿐만 아니라 지방 백자 수작들도 모았다”고 했다. 리움미술관 뿐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내 8개 기관이 소장품을 내놨다. 일본에서도 6개 기관 작품 34점이 건너왔다. 조선 중기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에 흘러갔던 작품들을 한국에서 보는 기회인 셈이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작품 22점을 내놔 풍성함을 더했다. 오사카도자미술관은 우수한 한국 컬렉션을 보유 중인데, 재일한국인 사업가 이병창 선생 등이 기증한 덕분이라고 한다.
총 4부로 이뤄진 전시는 조선 500여 년 동안 생산된 백자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며 그 안에 투영된 정신세계를 살피는 데 초점을 맞췄다. 1부는 청화백자(靑華白磁)·철화, 동화백자(鐵畵, 銅畵白磁)·순백자(純白磁) 등 명품을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국보·보물 31점과 함께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과 해외 소장 백자 8점을 전시했다. 전시 공간의 가벽을 없애고 사방에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유리 쇼케이스를 벽에 붙이지 않았다. 외부 빛을 차단한 블랙박스로 이뤄진 공간에서 하얀 빛무리가 찬란한 광휘를 발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맨 앞에서 ‘백자 청화매죽문 호(白磁 靑畵梅竹文 壺)’를 만날 수 있다. 높이 41㎝·아가리 지름 15.7㎝·밑지름 18.2㎝의 이 항아리는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선대에 이어 우리 도자기에 대해 관심을 뒀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구입 후 생전 무척 아꼈다고 전해진다.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白磁 靑畵鐵彩銅彩草蟲文 甁)’은 참기름병이 국보가 된 사연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기 팔당 부근에 사는 할머니가 야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발견한 병을 참기름 담으면 좋겠다고 여겨 행상 아주머니에게 1원에 팔았다고 한다. 그게 일본인 여성에게 팔려가 골동품상을 하던 남편이 백자라는 것을 알아본 후 여러 수집가를 거쳐 경매에 나오게 됐다. 우리 문화재 수집에 헌신한 간송 전형필이 1936년 당시 돈 1만5000원을 주고 사들인 덕분에 해방 후 국보로 간직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전시에선 300여 개 조각으로 쪼개졌다가 복원된 18세기 조선시대의 ‘백자 달항아리’도 볼 수 있다. 일본 도다이지(東大寺)에 있던 것인데 1995년 도둑이 훔쳐 달아나다 백자 달항아리를 놓쳐서 산산조각이 났다. 사찰 측에서 그 파편을 오사카도자미술관에 기증했고 미술관 측에서 완벽하게 복원했다. 그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음 자국은 남겨뒀는데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전시의 2부 공간은 하얀 바탕에 푸른색 안료로 장식한 청화백자를 보여준다. 조지윤 리움미술관 수석연구원은 “조선의 지배계층이 주로 향유한 청화백자는 군자의 품격과 수양 의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중국·한국의 청화 백자를 비교하는 공간도 있다. 중국 작품이 진하고 강한 빛이라면 한국 작품은 옅으면서도 깊은 멋이 우러난다.
3부는 철화·동화 백자를 소개한다. 조선 중기 전란 등으로 청화 안료를 구할 수 없어 철·동을 써 빛을 만들었기에 약간 검거나 붉은빛이 도는 작품들이다. 역시 청화백자에 비해 문양이 친근하고 소박하다. 꽃과 물고기 등을 추상 형상으로 표현한 것에서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느껴진다. 도쿄 일본민예관에서 출품한 ‘백자동화 작호문 호(白磁銅畵 鵲虎文 壺)’는 호랑이와 까치를 익살스럽게 담았다. 국내 소개는 처음이다.
순백자만을 모아놓은 4부 공간은 바름과 선함을 지향하며 유달리 흰색을 사랑했던 조선인들의 마음을 되새기게 한다. 순백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설백(雪白)·유백(乳白)·청백(靑白)의 미묘한 차이가 있는 점이 흥미롭다.
전시는 무료로 5월 28일까지 관람할 수 있는데 리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전시와 연계해 강연·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청소년 감상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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