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물가정책’이 진퇴유곡에 빠졌다. 물가 급등은 국가 경제는 물론 정권 존립까지 흔든다는 점에서 반드시 잡아야 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자유’와 ‘시장’을 강조하던 윤 정부도 직접적 개입에 나섰다. 윤 정부가 그 후유증을 모르지 않겠지만, 현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그런 응급조치라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 통제는 결코 정도(正道)가 아니고, 성공할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윤 대통령이 직접 은행 공공성을 강조한 것을 필두로 당국자들이 금융·통신·정유 분야에 개입하는 발언을 쏟아내더니, 소주·맥주 등 주류 가격에도 칼을 빼 들었다. 구두 경고 수준이 아니라 정유사의 도매가 공개 범위 확대, 소주 업체 실태조사 등 공권력 행사로까지 치닫는다. 정부 고민은 이해한다. 고물가로 실질소득이 마이너스인데 난방비 폭탄까지 가세해 민심이 흉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부 요인에 의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데 국내 업체만 누른다고 풀릴 일이 아니다. 주류 가격 인상 요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가스요금 억제가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부실을 천문학적 수준으로 키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 이상 문재인 정부 탓을 할 수도 없다. 한전은 지난해 영업적자가 32조6034억 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2021년 1조8000억 원이던 민수용 미수금이 지난해 8조6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소액주주들은 무배당에 반발해 집단 소송을 예고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의 실패는 반면교사다. “기름값이 묘하다”란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유업체들은 기름값을 한시 인하해야 했고, 세제 혜택을 받는 알뜰주유소는 지금껏 이중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억지로 물가를 누르려 해선 안 된다. 에어컨 수요가 폭증할 여름, 총선이 치러지는 내년 봄은 어떻게 견딜 건가. 이제라도 ‘물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민과 기업에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고통 분담 등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이럴 땐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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