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이봉주 국민 마라토너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선언했던 3·1절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나의 우상이자, 암흑 같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체육계에 한 줄기 빛이었던 마라토너 손기정 선생님. 1936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이자 제1호 스포츠 영웅(2011년·대한체육회)인 손기정 선생님은 스포츠가 또 하나의 독립운동임을 전 세계에 알리신 분이다.

손기정 선생님은 주권이 상실된 시대에 진정한 한국인의 모습을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하는 길은 오로지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뛰었다. 그러나 그는 국권을 찬탈한 일본에 금메달의 영광이 돌아가는 현실에 슬퍼하며 베를린올림픽 시상대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대신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월계수 나무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렸다.

하지만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경기대회에서 한글로 ‘손기정’이라 쓰고 국가에 ‘Korea’라고 적으며 일본인으로 오해받지 않고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알렸다. 이런 그의 모습은 꺼져가던 한국인의 긍지와 민족 자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언론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이어져 독립을 갈망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불씨를 지폈다.

손기정 선생님은 스포츠가 단순한 게임에 그치지 않고 국민을 ‘나라 사랑’이라는 깃발 아래 모을 수 있는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베를린올림픽 이후 손기정 선생님이 다시 뛰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혹자는 일제의 탄압 때문이라 하지만 손기정 선생님은 “나라 없는 백성은 개와 똑같아. 만약 일장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것을 알았다면 난 베를린올림픽에서 달리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날의 울분을 재현하고 싶지 않았던 손기정 선생님은 한평생 사랑했던 마라톤 ‘선수’가 아닌 광복 이후 태극기를 달고 달릴 이들을 키워내고자 ‘지도자’가 돼 전국을 누비며 인재를 발굴했다.

손기정 선생님의 묘소에는 ‘나라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고 쓰여 있다. 이는 올림픽역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손기정 선생님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2002년 작고하기 전까지 올림픽역사에 잘못 기록된 자신의 국적과 이름을 되찾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201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일본식 이름인 ‘Kitei Son, Japan’을 한국 이름 ‘손기정’으로 바꾸었으나 지금까지 국적은 한국으로 고쳐지지 않았다. 마라톤 후배로서 죄송스러울 따름이고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우리 기억 속의 손기정 선생님의 모습 하나는 바로 1988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봉송 최종 주자로 뛴 모습일 것이다. 가슴에 당당하게 태극 문양의 1988 서울올림픽 엠블럼을 달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개인적인 소망으로 손기정 선생님이 한국인으로 첫 마라톤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인 2036년 그의 마라톤 인생이 꽃핀 서울에서 다시 한 번 올림픽이 개최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그에게 잃어버린 조국 ‘Korea’를 되찾아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광복 이후 ‘조선마라톤보급회’를 창설해 그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한국 마라톤 발전의 기틀을 닦으셨던 손기정 선생님. 2036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통해 국가와 체육회가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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